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훠이훠이 올라~산상 힐링예술, 알록달록 빚어~시장 생활예술

입력
2015.12.23 17:00
0 0

구릿빛 작은 흉상 하나가 수 십억, 입이 딱 벌어진다. 예술에 대한 안목이 없으니 천박하다 소리 듣더라도 가격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원주 지정면 ‘뮤지엄 산’본관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만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작(作)‘무제’다.

알록달록한 생활공예품이 가득한 원주중앙시장 2층 미로예술시장의 6평 공방은 월세 10만원이다. 보증금은 없다. 고급예술과 생활예술, 성격과 차원은 전혀 다르지만 나름의 매력을 지닌 원주의 두 예술공간으로 여행을 떠났다.

뮤지엄 산 본관 앞 ‘아치형 입구’. 붉은 색상이 무채색 겨울 풍경에 더욱 도드라진다. 원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com
뮤지엄 산 본관 앞 ‘아치형 입구’. 붉은 색상이 무채색 겨울 풍경에 더욱 도드라진다. 원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com

▦산정에서 누리는 힐링 예술공간, 뮤지엄 산

이곳을 방문한 한 영국인 관람객은 ‘Crazy(미쳤다)’라고 했단다. 산꼭대기에서 둘러보는 풍경 자체가 대자연인데 거기에 인공적으로 자연을 닮은 공간을 조성했으니 근거 없는 비난은 아니다. 그러나 전체 관람로 길이만 2.7km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부지와 건물임에도 전시관은 도드라지지 않고 주변 풍광에 녹아 들었다. 물과 빛, 하늘과 바람 등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작품으로 환경훼손에 대한 거부감을 눅였다. 소통을 위한 단절(Disconnect to Connect)을 주제로 노출 콘크리트를 미로처럼 연결한 관람동선과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청조갤러리에선 내년 2월까지 판화전이 열리고 있다.
청조갤러리에선 내년 2월까지 판화전이 열리고 있다.
오른쪽은 팝 아트의 거장 엔디 워홀의 작품이다.
오른쪽은 팝 아트의 거장 엔디 워홀의 작품이다.
황조롱이를 형상화한 대형 플라워가든의 키네틱 작품.
황조롱이를 형상화한 대형 플라워가든의 키네틱 작품.
웰컴센터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길.
웰컴센터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길.

‘뮤지엄 산’이 산(山) 이름이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전원형 힐링 예술공간을 표방하고 있으니 산이 맞다. 여기에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SAN(Space, Art, Nature)이라는 자연과 예술의 의미를 가미했다.

웰컴센터를 통과하면 플라워가든과 워터가든을 차례로 지난다. 플라워가든에는 꽃대신 바람 따라 움직이는 대형 철골 작품이 눈길을 잡는다. 마크 디 수베로의 ‘제라드 먼리 홉킨스를 위하여’는 황조롱이를 형상화했다. 하얀 자작나무 숲길을 지나면 알렉산더 리버만의 또 다른 철제작품‘아치형 입구’가 본관으로 인도한다. 주변은 검은 자갈이 깔린 워터가든인데, 겨울이라 물 채운 모습을 볼 수 없는 점이 못내 아쉽다. 미술관 안팎으로 넘나드는 물소리와 풍경은 봄이 오기 전까지 상상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미술관은 크게 페이퍼갤러리, 청조갤러리, ‘제임스 터렐’전시관으로 구분된다. 페이퍼갤러리는 국내최초 종이전문박물관인 한솔종이박물관을 이전 확장했다. 화엄경과 제왕운기 등 2점의 국보와 다양한 공예품을 전시하고,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청조갤러리는 내년 2월말까지 판화전을 열고 있다. 1관은 사진이나 세밀화 못지않게 사실적인 한국 현대판화를 소개한다. 2관은 엘리자베스 키스와 폴 자쿨레의 작품으로 채웠다. 1920~30년대 서양미술가 눈에 비친 한국의 풍속과 인물을 담은 모습이 흥미롭다. 3관은 국제현대판화의 흐름을 볼 수 있게 꾸몄다. 더욱 화려해지고 대형화한 판화 중에는 팝 아트의 거장 엔디 워홀의 작품도 있다. 전시관은 작품 수에 비해 충분히 넓고 여유 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다.

‘뮤지엄 산’이 가장 자랑하고 신경 쓰는 전시관은 사실 본관보다 ‘제임스 터렐’관이다. 안내서는 “하늘과 빛을 관조하는 가운데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누리게 하며…내면의 영적인 빛을 마주하는 ‘빛으로의 여정’을 경험하게”된다고 설명한다. 어렵다. 지하로 스며든 건물 자체가 하나의 프로젝트고 독특한 예술체험공간이다. 시각적 심리적 착시현상을 이용해 평면과 공간을 넘나드는 4개 전시관을 돌아나오면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는 믿음이 기초부터 흔들린다. 천재 예술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관람객 입장에선‘예술은 사기’다. 카페테라스 넓은 창으로 펼쳐지는 겨울 풍경이 알싸하다.

▦알록달록 희망 가꾸는 생활예술공간, 미로예술시장

카페브러리 청춘, 꽃핀날, 무용담예술상점, 어썸브릭, 쁘띠캔들, 주니공방, 국악소리교실, 비비드플라워, 가벼운오후, 언니네오븐, 청춘이닭, 아라비…. 재래시장 간판이라 하기에는 파격적이다. 배기관이 노출된 천장에는 알록달록한 갓 전등이 내걸렸다. 하얀 페인트로 단장한 막다른 골목은 어엿한 전시장으로 변했다. 너덜거리던 판자 벽면은 화려한 색상의 팝 아트 인물화가 장식했다. ‘미로예술시장’으로 변신중인 중앙시장이 원주의 새로운 볼거리로 젊은이들을 모으고 있다.

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2,000만원이 들었을 만큼 폐허였던 미로예술시장에 다양한 공방이 입주하면서 밝고 젊은 공장으로 변신하고 있다.
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2,000만원이 들었을 만큼 폐허였던 미로예술시장에 다양한 공방이 입주하면서 밝고 젊은 공장으로 변신하고 있다.
막다른 골목은 상설 전시장으로 변했다.
막다른 골목은 상설 전시장으로 변했다.
6평 면실 공방 ‘어썸브릭’의 입주비용은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이다.
6평 면실 공방 ‘어썸브릭’의 입주비용은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이다.
0 개성 넘치는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미로공방’.
0 개성 넘치는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미로공방’.

“한번 들어오면 깜깜해서 나갈 구멍도 못 찾을 정도였는데, 이제 서광이 비치는 거지.”중앙시장 2층 상가에서 15년째 금은세공 가게를 운영하는 임동순(67)씨의 얼굴이 요즘 환해졌다. 여느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1990년대 말부터 급격하게 쇠락의 길을 걸었다. 소유구조가 복잡해 재건축은 번번이 무산됐고 상가는 폐허로 변해갔다. 결국 재생사업으로 방향을 틀었고, 시장과 문화예술이 결합된 ‘미로예술시장’이 탄생했다. 건물 4개를 연결한 복잡한 길(迷路)이 본뜻이지만, 방문객에게는 아름다운 길(美路)이고 맛있는 길(味路)이다.

올 초부터 하나 둘씩 들어서기 시작한 공방과 카페가 이미 19개, 내년 2월까지는 20여 점포가 추가로 입주할 예정이다. 매월 2째 토요일에 열리는 벼룩시장(플리마켓)이 100원, 200원 경매로 입 소문을 타면서 원주시민뿐 아니라 외지인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미로예술시장의 또 다른 희망은 ‘젊은 사장님’들이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김소현, 용옥비씨는 취업과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다 이곳에 공방을 열었다. 미술학과 전공을 살려 도자기에 캐릭터와 팝 아트를 접목한 생활소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처음엔 화장실 위치를 물어보거나 지나가다 들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 주문제작을 의뢰하는 단골까지 생겼다. 시장을 보는 동안 체험프로그램에 아이를 맡기는 이들도 늘었다.

이수정(27)씨가 면실 공방을 개설한 건 무엇보다 값싼 입주비용 때문이다. 6평 규모의 가게가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이다. 가죽 양초 꽃 도자기 금속세공 등 다양한 공방이 있어 정보공유에도 유리하고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3살배기 아이는 카페 이모가 주는 쿠키에 맛을 들였고, 피아노학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도 재미를 붙였다. 시장 어른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도 힘이다. 통념과 달리 아이 키우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공예백화점 ‘무용담’의 이태훈(34) 사장은 훗날 무용담의 주인공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50여 수공예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데, 작은 액세서리에서부터 독립출판물까지 품목은 수백 가지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에겐 미치지 못하지만 애초 계획만큼은 된다. 원주에도 젊은이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맞아 떨어졌다. 인구 33만의 도시에 6개의 대학이 있고, 도시 규모에 비해 시민단체가 활성화돼 있다는 점은 미로예술시장의 보이지 않는 힘이다.

미흡하고 허술한 점도 눈에 띈다. 그 흔한 아케이드 지붕도 없어 시장이 전체적으로 어둡다. 공방이 입주하면서 벽면은 깔끔하게 변했지만 골목 시멘트바닥은 아직 그대로다. 현재진행형이지만 공예와 생활장식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한나절이 금방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밝은 미소와 희망을 본다는 것은 미로예술시장 탐방의 가장 큰 소득이다.

원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여행메모]

●뮤지엄 산은 오크밸리 내에 위치하고 있다. 갤러리만 관람하면 1만5,000원, ‘제임스 터렐’관을 포함하면 2만8,000원이다. 전문해설가의 안내를 받으려면 7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원주중앙시장은 원주역에서 약1km, 걸어서 15분 거리다. 1층은 기존 상가, 2층이 미로예술시장이다. ●중앙시장에서 가장 대표적인 먹거리는 쇠고기 특수부위 모듬구이. 제비추리 아롱사태 치마살 부채살 등을 한 접시에 담아 내는 18개 식당이 한우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원주 시내에서 이름난 식당 중 하나는 ‘박순례 손말이고기 산정집’(033-742-8556), 얇게 썬 우둔살에 깻잎·쪽파·미나리 등 채소를 말아 구워먹는다. 예약 손님만 받는다. ●문막읍의 장터추어탕(033-735-2025)은 채소와 감자 등을 듬뿍 넣은 원주추어탕을 잘하기로 소문난 집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