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잠들어있던 스크린의 전설을 깨웠다. ‘스타워즈’ 시리즈로서 10년 만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개봉 주 전세계에서 5억2,490만달러(약 6,176억원)를 벌어들이며 상영 첫 주말 역대 흥행 기록을 깼다. 전세계 역대 흥행 1위인 ‘아바타’의 기록(27억8,796만달러ㆍ약 3조2,803억원)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의 건국신화나 다름없다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국 관객들은 좀 뜨뜻미지근한 반응(24일까지 관객 156만3,941명)을 보이나 올 겨울 전세계 스크린은 ‘별들의 전쟁’이 장식할 듯하다. 그런데 혹시 이건 아시는지? ‘스타워즈’가 일본영화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물론 열성 영화팬들은 다 아는 내용이지만.
‘스타워즈’의 창시자는 조지 루커스 감독이다. 그는 일본영화 ‘숨은 요새의 세 악인’(1958)을 본 뒤 ‘스타워즈’의 얼개를 떠올리게 된다.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일본영화의 천황이라 일컬어지는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 감독의 작품이다. 일본 전국시대 적군의 위협을 뚫고 주군의 딸(공주로 표현) 유키를 영지로 무사히 모시려는 한 장수의 사연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스타워즈’와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의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우스꽝스러운 두 캐릭터의 등장이다. 수다스러운 C3PO와 그의 단짝 R2D2는 레아(캐리 피셔) 공주 곁에서 티격태격 다투면서 ‘스타워즈’의 감초 역할을 한다. ‘숨은 요새의 세 악인’에는 농부 출신 병사 둘이 조연으로 나온다. 조금은 모자라 보이면서도 인간적인 두 사람은 긴장으로 가득할 이야기에 휴식처 같은 역할을 한다. 어느 공동체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공주와 그를 수행하는 두 감초 캐릭터, 많이 닮아 보이지 않나?
‘숨은 요새의 세 악인’에서 공주를 모시는 장수 마카베(미후네 도시로)가 등장한다. ‘스타워즈’에서는 레아 공주를 지키려는 제다이 기사 오비완 캐노비가 나오는데 마카베에서 비롯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루커스 감독은 오비완 역할을 도시로에게 맡기려 했다. 도시로가 제안을 거부하면서 영국 명우 알렉 기네스가 오비완을 연기한다. 이후 ‘스타워즈’ 에피소드 1~3편에서 젊은 오비완을 영국 배우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했다. 만약 도시로가 오비완 역을 받아들였다면 또 다른 일본배우가 ‘스타워즈’의 한 켠을 계속 차지했을 것이다.
‘스타워즈’ 속 악의 축인 다스베이더는 사무라이의 외관을 많이 닮았다. 특히 다스베이더를 상징하는, 하단부가 날개처럼 퍼진 가면은 전국시대 일본 장수들의 투구와 닮은 꼴이다. 다스베이더는 ‘숨은 요새의 세 악인’에서 공주와 마카베 일행에게 위협을 가하는 적장 다도코로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에는 주름이 얼굴을 뒤덮고 매번 심각한 표정을 짓는 외계생명체가 등장한다. 제다이들의 큰 스승인 요다다. 요다는 악의 제국에 맞서는 루크와 오비완 캐노비 등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영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마음이 지치고 혼란스러울 때 현명함으로 가득한 조언을 준다.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1954) 속 농촌 촌장도 마을 사람들에게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촌장, 요다와 외모가 많이 닮았다.
아키라 감독의 영화로부터 영감을 얻어 부와 명예를 거머쥔 루커스 감독은 훗날 보은에 나선다. 일본에서 제작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아키라 감독의 ‘카게무샤’ 제작을 맡는다. ‘대부’ 시리즈로 유명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함께 한 ‘카게무샤’는 1980년 제33회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 1990년 제62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아키라 감독이 평생공로상을 받을 때 루커스 감독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 수상자 발표를 하기도 했다. 아키라 감독을 흠모했고 그의 영화에서 ‘스타워즈’를 착안했던 미국 감독이 은혜를 제대로 갚은 셈이다.
‘스타워즈’가 일본문화를 품고 있는데도 왜 미국의 건국신화나 다름 없다는 평가를 받을까. ‘스타워즈’의 이야기 전개는 미국의 근대 개척사를 다룬 서부영화 그대로다. 광활한 우주를 날아다니는 우주선은 서부 대지를 내달리는 말과 포장마차를 떠올리게 한다. 선과 악의 대결 구도도 초기 서부영화의 원형에 가깝다. 아키라 감독은 미국 서부영화를 대표했던 존 포드 감독의 여러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7인의 사무라이’와 ‘숨은 요새의 세 악인’, ‘요짐보’(1961) 등 그의 많은 작품이 서부극의 틀을 지니고 있다. ‘7인의 사무라이’는 미국에서 ‘황야의 7인’(1960)으로, ‘요짐보’는 ‘라스트 맨 스탠딩’(1996)으로 각각 다시 만들어졌다. 미국영화의 영향을 받은 일본 감독의 영화가 다시 미국적 영화에 큰 영감을 준 셈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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