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청구권협정의 가장 큰 문제는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불법성을 규명하지 못한 점이다. 한일합방 과정의 조약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한 협정 2조에서, 이를 원점부터 무효였다고 본 우리와 달리 일본은 원래는 유효했지만 패전과 한국 건국 등으로 협정이 체결된 1965년 현재에는 무효가 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렇게 각자의 해석으로 봉합하면서 청구권자금 성격도 배상이 아닌 채권ㆍ채무 성격으로 변질됐다. 이제 와서 부정할 수는 없지만 협정이 결코 완전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 청구권협정 위헌 소송이 헌법재판소의 각하 결정으로 끝났다. 협정이 소송의 근거가 아니어서 위헌 여부를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합헌이든 위헌이든 한 쪽으로 결정할 경우의 외교적 후폭풍을 고려한 현명한 판단이라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절반만 맞는 말이다. 협정이 한일관계의 출발점이자 토대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일관계의 발전과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부작위에 따른 위헌’을 지적한 헌재 결정이나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과도 결이 맞지 않는다.
▦ 우리가 한일관계를 심려하는 만큼 일본도 그런지 의문이다. 7월 일본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일본은 ‘forced to work’란 말로 ‘강제노동’을 인정했음에도 등재 결정 뒤에는 이를 ‘의사에 반해 일하게 됐다’는 의미라며 딴소리를 했다. 누구 영어가 맞느냐 식의 치졸한 논변으로 강제노동을 다시 부정한 것이다. “침략의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아베 총리)는 등의 궤변으로 뒤통수를 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일본인이 ‘혼네(本音ㆍ속마음)’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쯤 되면 표리부동 수준이다.
▦ 일본이 외교장관급 위안부 협상을 공개하면서 보인 행태가 또 논란이다. 회담 시작도 전에 유리한 내용을 언론에 흘려 기정사실화 하는가 하면 양국의 공식발표 이전에 외교장관 회담을 언론에 공개하는 외교 결례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 정부가 위안부 소녀상을 옮기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정체불명의 보도까지 나왔다. 기시다 후미오 장관이 “협상에서 땀을 흘릴 용의가 있다”는 말도 순수하게 들리지 않는다. 상대를 자꾸 의심하는 게 우리의 피해의식 때문만일까.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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