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이면 매년 내야하는 자동차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자동차세는 지방세법에 따라 엔진 배기량을 기준으로 정해지는데 배기량이 크면 아무리 오래됐어도 세액이 크기 때문에 부담스럽다.
자동차세 산정기준은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달라졌지만 배기량을 기준으로 삼은 지 50년이 넘는다. 해외에서도 우리처럼 매년 자동차 보유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산정기준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많은 선진국들이 대부분 엔진 배기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삼는다.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국가에서는 한동안 엔진 출력이 자동차세 부과 기준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세금 기준이 엔진의 성능을 동력계로 측정해 얻은 실제 출력이 아니라 산술적으로 계산해 얻은 이론적 출력이었다. 계산 방법도 독특했다. 엔진이 작동할 때 움직이는 피스톤 크기와 운동거리 등을 간단히 곱하고 나눠 출력을 계산했다. 당연히 실제 출력과 차이가 있다. 그래서 계산을 통해 얻은 과세용 수치를 과세마력(tax horsepower)이라고 해 실제 출력과 구분했다.
세금을 적게 내고 싶은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한결같아서 자동차 회사들도 그런 심리를 잘 이용했다. 과세마력을 차 이름으로 정해 세금 적게 내는 차라는 점을 알린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 10마력’ ‘쉐보레 15마력’ 같은 이름이 흔했던 것이다.
엔진 기술이 발전하고 자동차가 대중화되며 1920년대 이후 조금씩 사라졌지만 프랑스에서는 1950년대까지 과세마력이 모델명으로 쓰였다. 시트로엥이 만든 장수한 대중차 ‘2CV’는 1990년까지 생산됐다. 2CV는 프랑스어로 2마력이라는 뜻이다.
초기 롤스로이스의 명차로 ‘실버 고스트’라는 별명을 얻은 ‘40/50hp’처럼 이름에 과세마력과 실제 출력을 함께 쓴 경우도 있다. 출력을 과세기준으로 삼은 제도는 엔진 설계에도 영향을 미쳐 자동차 회사가 속한 나라에 따라 독특한 엔진 특성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 가을 우리 자동차세 산정기준을 배기량 대신 차 값으로 바꾸는 지방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허점은 있지만 현재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그런데 이번 주면 제 19대 국회 임기가 끝난다. 지방세법 개정안은 정기 및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자동 폐기될 듯 싶다. 이렇게 되면 50년 만의 자동차세 기준 변화도 가는 해와 함께 나중을 기약하게 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