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이제 희망퇴직 대상이더라고요.” 시중은행 차장인 A(40)씨는 최근 잇따른 금융권의 희망퇴직 소식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A씨는 1975년생 94학번 수능 첫 세대다. 여느 때처럼 ‘단군 이래 최대 취업난’이던 2000년대 초반 바라던 은행에 취업한 지 10여년.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나는 선배들이 더 이상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 왔다. 금융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가장 크다는 생각이다. A씨는 “10년 전에는 지점에 손님이 너무 많아서 우스갯소리로 좀 그만 왔으면 했는데 요즘은 점포에 손님이 너무 없어 다들 걱정”이라며 “우리끼리 언제 잘리더라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30대 중반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소리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연말 구조조정 한파가 은행, 보험, 카드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몰아치고 있다. 저금리, 저성장의 장기화로 금융권 수익성이 전반적으로 악화한데다 금융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전례 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탓이다. 내년 경제 전망 역시 올해와 크게 다르지 않아 금융권 전반에서 희망퇴직을 확대하는 등 인력 감축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울한 관측이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구조조정 칼바람이 가장 거센 곳은 고연봉, 안정적인 직장의 대명사였던 은행권이다. 올해 KB국민은행(1,122명) 한국SC은행(961명) 신한은행(310명) 우리은행(240명) 4곳에서만 모두 2,500명이 넘는 인원이 희망퇴직으로 일터를 떠났다. 현재 희망퇴직을 진행하고 있는 KEB하나은행, 기업은행, 농협까지 포함하면 주요 시중은행의 올해 희망퇴직자는 3,000명이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련의 은행권 희망퇴직은 그 대상이 확대됐다는 점에서 은행원들의 체감온도는 예년보다 훨씬 낮다. KEB하나은행은 22~24일 4년 만에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는데 대상이 관리자(부ㆍ팀장)는 전원, 책임자(과ㆍ차장)는 만 43세 이상, 행원급은 만 40세 이상부터 신청이 가능하도록 했다. 수능 첫 세대인 만 40세도 희망퇴직 대상자에 오른 것이다. 외국계은행인 SC은행의 역시 4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직원 5명 중 1명 꼴(18.5%)인 961명을 내보냈다.
은행권의 이 같은 이례적인 희망퇴직 단행은 수 년째 악화하는 은행 수익성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2011년 2.3%에서 올해 상반기 1.6%까지 곤두박질쳤다. 미국의 금리인상에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저금리 기조로 인한 은행 수익성 악화는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내년 출범하는 인터넷전문은행, 금융권의 비대면채널 활성화 등 금융산업 전반의 인력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구조적 원인도 감원 한파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은행 대면 창구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시중은행의 영업점포(출장소 제외) 수는 2011년 6,671개에서 올 상반기 6,347개로 324개 감소했다.
중소ㆍ영세가맹점 수수료 대폭 인하로 휘청대고 있는 카드업계도 구조조정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업계 1위인 신한카드가 7년 이상 근속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176명이 이달 말 퇴직했고, 매각설이 끊이질 않는 삼성카드도 지난달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휴직ㆍ전직 지원 프로그램으로 100여명을 감원했다.
장기화한 저금리와 불황으로 역마진에 시달리고 있는 보험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상반기에 메리츠화재가 창립 이래 처음 희망퇴직을 실시해 전 임직원의 15.8%인 400여명이 회사를 떠났고, 현대라이프생명과 KB손해보험은 일부 인력을 한직으로 밀어내 ‘찍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삼성생명 역시 직접적인 희망퇴직은 아니지만 지난 10월 희망자를 대상으로 최장 3년까지 휴직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 50여명의 신청을 받았다.
금융권 인력 구조조정 압박은 내년 이후 심해질 공산이 크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사들이 전체 비용의 60% 상당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일 수 밖에 없다”며 “비대면 창구가 늘고 점포 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소매금융 인력을 확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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