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이 저물고 있다. 올해도 정보기술(IT) 업계는 ‘예전의 10년이 지금의 1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거듭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의 삼두마차는 공룡처럼 커진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여전히 급성장하며 무인자동차,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 새로운 분야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테슬라가 지난 10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내놓은 자동운전기능은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일반도로에서도 문제없이 작동하며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무인운전자동차가 상용화되는 것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더불어 올해는 업계 지형도를 바꿀 정도로 급성장하는 대형 스타트업(초기 창업기업)들이 급증한 한해였다. 10억달러(1조2,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평가받는 비상장회사를 유니콘스타트업이라고 하는데 CB인사이츠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에만 전세계에서 70개 가까이 새로 등장했다. 전체 유니콘 145개사의 절반가량이 올해 나온 것이다.
이들은 드론, 웨어러블,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소셜미디어 등 새로운 기술트렌드를 기반으로 업계의 기존 전통강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쿠팡과 옐로모바일이 유니콘스타트업으로 꼽힌다.
특히 지난 5월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10억달러를 투자받아 약 5조~6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쿠팡은 당일 로켓배송 등을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우며 롯데, 신세계 등 기존유통업계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올해 아마존의 주가가 2배 이상 뛰어오르면서 시가총액에서 월마트를 크게 뒤집어버린 일이 앞으로 국내에서도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처럼 파괴적 혁신회사들이 여러 영역에서 등장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경쟁은 더 좋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낳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에게도 이익이다. 내년 국내 IT업계에서는 어떤 경쟁이 벌어질 지 3가지 영역을 꼽아봤다.
기대되는 P2P 대출시장
내년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분야는 금융이다. 모바일에 기반한 IT기술로 금융을 혁신시키는 핀테크 트렌드 때문이다.
우선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스타트업의 대결이 예상된다. 이달 초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받은 카카오와 KT컨소시엄은 내년 상반기 준비에 박차를 가한 뒤 후반기 최대한 빨리 모바일 은행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다. 특히 카카오가 국내 모바일메신저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카카오톡플랫폼을 기반으로 어떤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선보일지 관심거리다. 중국에서는 텐센트의 모바일메신저 위챗을 통한 금전거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만큼 카카오톡을 통해 은행서비스를 성공시킬 가능성도 크다. 성공의 관건은 카톡 고객입장에서 얼마나 사용하기 쉽고 차별화된 편익이 있느냐다. 그렇지 않다면 찻잔속의 태풍에 그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핀테크의 혁신은 꼭 인터넷전문은행이 독점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다양한 혁신은 작은 틈새시장 장악을 위해 도전하는 수많은 핀테크스타트업들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변수는 금융당국이 핀테크스타트업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얼마나 규제를 적절하게 풀어주느냐에 달렸다.
특히 국내에서는 P2P대출시장이 기대된다. P2P대출이란 개인이 투자한 목돈을 또 다른 개인이나 중소기업이 대출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저축은행 등의 고금리와 은행의 저금리 사이의 중금리대 대출시장을 놓고 특화된 서비스에 집중하는 것이다.
8퍼센트, 펀다, 렌딧 등의 스타트업이 주목을 받고 있고 속속 새로운 업체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직장인, 소상공인, 학생 등을 겨냥한 틈새시장을 놓고 차별화된 대출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P2P대출은 초기 단계라서 연체도 거의 발생하지 않고 순항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후반기로 갈수록 조금씩 업체간의 우열이 가려질 것이다. 개인화된 신용평가 알고리즘 등 차별화된 기술을 쌓은 업체가 장기적으로 승자가 될 것이다.
모바일페이먼트에서 삼성페이의 독주가 내년에도 지속될지 관심거리다. 지난 8월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삼성페이는 두 달만에 100만 가입자를 돌파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핀테크 규제완화 분위기의 덕을 톡톡히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애플페이나 알리페이 같은 강력한 해외경쟁자가 없는 국내시장에서 손쉽게 거둔 승리라는 느낌도 있다. 새해에는 해외업체들과 기존 금융업계의 반격이 예상된다.
온디맨드 비즈니스의 확산
두 번째 큰 변화가 기대되는 영역은 스마트폰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온디맨드’ 비즈니스의 확산이다.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는 우버(Uber)는 전세계적으로 온디맨드창업붐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에서는 마치 알라딘의 램프처럼 스마트폰을 누르기만 하면 택시도 오고 음식배달도 되고 마사지사도 오고 심지어 의사도 부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이처럼 오프라인 비즈니스와 온라인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것을 한국, 중국 등에서는 O2O(Online to offline)비즈니스라고 한다. 이런 서비스는 고객의 주문(Demand)에 따라서 바로 대응을 한다는 뜻으로 온디맨드 서비스라고도 한다.
지난 몇 년새 한국에서도 세탁(세탁특공대), 꽃배달(원모먼트), 대리운전(버튼대리) 등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이 영역에 뛰어들었고 내년부터 본격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새로 카카오의 CEO로 취임한 임지훈 대표는 지난 10월 취임 이후 가졌던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용자가 원하는 것을 즉시 제공하는 온디맨드 서비스로 모바일 2.0시대를 이끌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카카오는 지난달 고급택시서비스인 카카오블랙을 시작했고 대리운전서비스도 준비중이다. 우버도 정부의 규제로 중단했던 우버블랙서비스를 곧 국내에서 다시 시작하며 카카오택시블랙과 일전을 준비중이다.
중국 업체의 국내 공략 강화
세번째로 변화가 예상되는 영역은 스마트폰과 스마트가전을 중심으로 한 전자, 가전시장에서 중국업체들의 약진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듣보잡’ 회사에 가까웠던 샤오미는 이제 국내 정식상륙이 가장 기대되는 중국 브랜드다. 가격대성능비가 뛰어난 스마트폰 보조배터리로 인기를 끌더니 2만원대 운동측정웨어러블 미밴드, 디지털 스마트체중계, 블루투스 스피커 등의 기기가 온라인쇼핑몰을 중심으로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전까지 화웨이 등 중국업체들은 낮은 브랜드 인지도와 국산제품에 비해 떨어지는 완성도때문에 국내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았다. 하지만 샤오미의 경우 높은 화제성과 함께 배터리팩, 미밴드 등으로 친밀감을 높이면서 국내 사용자층이 꽤 많아졌다. 나인봇미니 등 샤오미의 신제품이 발표되면 네이버 급등검색어로 올라가고 SNS에서 입소문이 나는 등 관심이 집중된다.
내년 초 샤오미TV가 국내에서 정식 발매될 예정이라는 관측도 있다. 샤오미 제품의 국내독점공급회사가 되기 위해 많은 유통업체들이 줄 섰다는 소문도 있다. 중국 내의 극심한 경쟁 때문에 스마트폰의 성장세가 꺾였다는 평가를 받는 샤오미는 그만큼 해외시장 진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의 위치를 위협하는 화웨이도 본격적인 국내 진출의 시동을 걸고 있다. 최근 LG유플러스가 단독판매를 시작한 화웨이의 저가폰 Y6는 일주일 만에 5,000대가 팔리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중국전자회사들을 ‘짝퉁’이나 만드는 회사로 평가절하할 수 없게 됐다. 브랜드인지도를 높이며 고품질의 제품을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중국회사들이 내년 삼성과 LG가 장악한 국내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전해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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