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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韓日 ‘위안부 합의’,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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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韓日 ‘위안부 합의’,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입력
2015.12.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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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 5개항의 값진 합의

이상론 완전 충족은 어려워도

현실적 수용 태세 보일 만하다

한일 양국이 28일 서울에서 열린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에 최종 합의했다. 이로써 양국 관계, 특히 갓 복원된 양국 정상(頂上) 대화의 심화에 최대 걸림돌이었던 위안부 문제는 제기된 지 24년 만에,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다 가기 전에 최종 해결의 길에 접어들었다. 피해자 개인이나 지원단체는 앞으로도 이 문제에 매달릴 개연성이 크지만, 적어도 정부 사이의 협상은 끝났고, 대체로 적절한 매듭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날 회담 직후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성 장관이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구체적 합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위안부 문제는 당시 일본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 둘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거듭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다. 셋째,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예산으로 10억엔을 일괄 출연해 양국 정부 협력 아래 모든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시행한다.

넷째, 이번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전제로 양국은 이번 합의가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책임에 합의하고, 앞으로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상호 비난과 비판을 자제한다. 다섯째,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소녀상’에 대한 우려를 인지하고 관련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적절히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앞의 3개 합의가 한국측 요구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답이라면, 뒤의 2개 합의는 일본측 요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

양국 정부의 이번 합의는 피해자 할머니들과 지원단체의 즉각적 반발을 불렀지만, 그 동안 우여곡절을 거듭했던 양국 협상의 경과, 미국의 적극적 관심을 비롯한 국제적 환경,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령화에 따른 해결의 시급성 등에 비추어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기는 어렵다. 국제법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적 요구와 기대를 모두 충족할 최선책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는 현실적 관점의 차선책일 수 있다는 뜻이다.

우선 일본 정부가 ‘도의적ㆍ윤리적’ 따위의 수식어를 뺀 ‘책임의 통감(痛感)’을 표명하고, 아베 총리가 일본 정부의 기관인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밝혔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이자, 고노 담화의 확인이다. 또한 한국에 둘 재단의 출연금을 전액 일본 정부가 예산으로 내겠다는 것도 과거의 민간모금 위주의 방식에 비춰서는 눈에 띄는 진전이다. 그 동안 양국 정부의 관련 협의에서 가장 진전된 내용으로 여겨져 온 ‘사사에 안(案)’에 비해서도 여러 각도로 ‘공식적 성격’이 강화됐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그런 진전이 역대 일본 정권 가운데 보수색채가 가장 두드러진 아베 정부에서 이뤄졌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물론 이런 상징성은 국내에서 오랫동안 거론된 ‘동원의 강제성’ 이나 엄밀한 의미의 ‘법적 책임’인정과는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가 밝힌 ‘책임의 통감’의 해석을 둘러싼 양국 간 논란의 불씨 또한 그대로 남았다. 다만 엄밀한 ‘법적 책임’의 인정과 이에 자동으로 따르게 될 ‘손해 배상’ 요구는 한일 양국 사이에 가로놓인 국제법적 현실을 무시할 때만 가능하다. 1965년의 청구권 협정의 본질이 식민지 지배 피해 보상이 아니라 양국 간 재산권 정리였고, 한일기본조약에서 한일합병조약의 효력에 대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고 봉합한 것 모두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한국이 제14조국(전승국)이 아닌 제4조국(신생독립국)이었던 데 따른 불가피한 결과였다. 따라서 65년 기본조약 체제의 전면 수정, 나아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전면 부정이 아니고서는 외교 협상에서 꺼내어 들 카드이기 어려웠다. 더욱이 일부 오해와 달리 헌법재판소의 2011년 ‘행정 부작위’ 위헌 결정이나 최근의 강제동원(징용) 관련 각하 결정이 모두 65년 한일조약의 유효성을 전제했다는 점도 되새길 만하다. 이런 점에서도 이번 합의는 제한된 법적 공간 안에서 이뤄진 정치ㆍ사실적 합의의 최대치에 근접했다.

그렇다고 이번 합의로 양국 간 과거사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거나 해소 전망이 마냥 밝아진 것은 아니다. 독도 문제나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 역사교과서의 기술 문제 등은 그대로 남았다. 양국 정부 간의 적극적 대화 통로에서 커다란 걸림돌이 제거됐다고는 하지만, 양국 외교의 궁극적 목표인 양국민의 우호ㆍ친선과 그 바탕인 상호신뢰 회복ㆍ심화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런 외교 목표는 이번 합의의 차분한 이행을 통해 점진적으로 접근해 가야 하고, 바로 이 점에서 양국민의 수용 태도와 양국 정부의 성실한 약속 이행이 중요하다. 무성한 우려가 제기된 소녀상 문제나 ‘최종해결’선언도 그런 양국의 노력을 전제할 때만 실질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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