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늘 생각을 앞질러 온다. 메르스, 카카오택시, 샤오미, 컬러링북, 쿡방, 여혐, 국정 교과서, 응답하라 등 2015년을 수놓은 단어들에 이어 내년엔 어떤 단어들이 우릴 울고 웃게 할까. 시중에 나온 트렌드 예측서들을 뒤져 2016년 풍경을 미리 내다봤다.
집으로 숨는 사람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옛 말이 2016년의 정언명제로 자리잡을 태세다. 만성화하는 불경기, 들끓는 혐오와 범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유일한 안식처는 결국 집뿐이라는 절박함이 전 세대를 파고들고 있다. ‘2016 대한민국 트렌드’(한국경제신문)에 따르면 성인 남녀 2,000명 중 70.4%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고 답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 등이 쓴 ‘트렌드 코리아 2016’(미래의 창) 저자들은 이를 ‘플랜Z’ 현상의 일환으로 봤다. 만성화한 불경기와 고용불안 등의 긴장 속에서 사람들의 소비행태가 플랜A(최선)도 플랜B(차선)도 아닌 플랜Z(최후의 보루)의 패턴을 보인다는 것. ‘적게 쓰지만 만족은 크게 얻으려는’ 이 전략의 효과적인 구현 장소는 바로 집이다. 홈 캠핑, 셀프 인테리어, 컬러링 북, 나노 블록 등의 인기가 상승세였던 올해에 2016년에도 ‘집으로, 집으로’열풍은 계속될 전망이다.
브랜드 후광은 가라, 가성비의 시대
‘호갱님’이 되지 않겠다는 세간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비장하다. ‘호갱님’은 호구(虎口)와 고객의 합성어를 발음 나는 대로 적은 말로, 브랜드의 후광이나 그럴듯한 선전에 속아 비싼 값을 지불하는 어수룩한 소비자를 뜻하는 인터넷 용어다. 호갱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떠오른 새로운 기준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 모조품 브랜드라는 오명을 상쇄하며 가성비 시장에 등장한 대표주자는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 샤오미다. 합리적 값과 무난한 구성의 편의점 도시락, 2,000~3,000원에 용량은 더 커진 저가 커피들, 중저가 루나폰, 대형마트와 편의점의 대용량 PB 상품 등도 가성비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이제 우리는 화려한 스펙과 브랜드의 상품들을 향해 외친다. 호갱님은 없다 전해라. 딱 필요한 값만 내고 필요한 만큼만 쓰겠노라!
카카오택시 그 다음, 모바일 주문의 시대
올해 5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모든 것이 우버화되고 있다’는 기사에서 유사 콜택시앱 서비스 우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알렸다. 우버는 차량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과 남는 시간에 자신의 차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로, 호출부터 결제까지 모바일 앱을 통해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신문은 우버의 개념이 차량을 넘어 택배, 음식배달, 카풀 등으로 확산, 기업과 개인이 아닌 개인과 개인 간의 공유경제가 실현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불신의 사회’ 한국에서 안심하고 남의 차를 탈 수 있는 날이 속히 오진 않겠지만 모바일 앱을 통해 오프라인 서비스를 제공 받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올해 대표적 히트 상품인 카카오택시를 비롯해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 같은 음식 주문앱이 그것. ‘모바일 트렌드 2016’(미래의 창)에서는 모바일을 매개로 고객과 근처에 있는 서비스 제공자를 연결해주는 ‘온 디맨드 서비스’야말로 향후 모바일 트렌드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차장 예약, 차량 수리, 세차, 헬스, 미용 서비스, 식자재 구매, 의료 서비스까지 모바일 앱으로 주문할 날이 멀지 않았다.
도시 탈출족을 위한 신기술 발전
헐렁하고 느린 삶을 좇아 대도시를 탈출하는 현상은 이미 오래된 흐름이지만, 최근 교외 거주 비용을 줄여줄 신기술 덕분에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2016~2026 빅이슈 트렌드’(일상이상)는 기존의 중앙집중식 전력 생산 및 공급 방식에서 벗어난 태양광 등 소규모 발전과 이를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나누는 지능형 전력망이 발달하면 가정과 직장의 전기료를 절감시켜 귀촌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통계청의 ‘연간 국내 인구 이동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서울을 빠져나간 순유출 인구는 8만 9,000명으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이들을 겨냥한 소형 전원주택과 조립식 주택 시장도 커지고 있다.
ㅇㅈ세대 (인정세대)
요즘 20대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식의 위로는 반발만 산다. 그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인정을 요구한다. 자기 표현에 익숙한 ‘1인칭 세대’로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끝없이 나를 노출하고 남과 나를 구분지으며, 사진을 찍거나 옷을 입을 때도 따라 하지 않고 내 식대로 연출한다. 하지만 별 걸 다 인증한다 싶을 만큼 인증에 골몰하고 인증하기 위해 소비하는 모습에는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불안이 깔려 있다. ‘관심 받고 싶어서 그랬다’는 일베족의 인증 놀이가 대표적이다. ‘2016 상반기 20대 트렌드 리포트’(대학내일)에서는 젊은층 사이에서 ‘극혐’ ‘급식충’ ‘진지충’ 등 혐오의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는 것도 구별 짓기를 통해 나는 다르다고 안심함으로써 자신을 인정하려는 수동적 공격성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미환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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