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1ㆍ2차관,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직접 만나 협상결과 설명
피해 할머니들, 여전히 공식사과와 법적 배상 요구
“당신 누구예요? (위안부문제)해결했다고 보고 하러 왔어요? 왜 우리 두 번 죽이려 해요? 당신이 내 인생 살아 준 거예요? 나이 많아서 모른다고 무시하는 거예요? 어느 나라 외교통상부예요?”
29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피해 할머니 쉼터인 이 곳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88)할머니가 전날 협상 결과의 불만을 퍼부었다. 당황한 임 차관은 약 5분간 꾸지람을 듣다가 뒤늦게 들어온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9) 할머니가 들어오는 틈을 타 겨우 자리를 잡았다.
할머니들의 꾸지람을 각오한 듯 임 차관은 “오늘 야단 맞기 위해 왔다”며 운을 뗐다. 임 차관은 이어 “위안부 문제 해결 시급성과 한일관계 개선 차원에서 협상이 타결됐다”며 “정부가 향후 피해 할머니들의 존엄과 명예회복은 물론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날 협상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할머니들의 격앙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협상 내용을)미리 말씀 못 드린 건 (크리스마스)연휴기간 중 여러 사항이 급하게 진전되면서 그랬다”는 임 차관의 설명에 이용수 할머니는 “이런 일에 발벗고 나서야죠. 연휴 찾고 쉬는 날 찾고 그렇습니까?”라고 되받았다.
할머니들은 위안부 협상을 둘러싼 ‘선타결 후보고’라는 순서가 뒤바뀐 정부의 외교 행태에 대해서도 따져 물었다. 협상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인 자신들이 철저히 배제된 점, 일본의 법적 책임 부분을 명확히 하지 못한 점, 소녀상 이전 문제 등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따졌다. 몇몇 할머니들은 ‘협상 무효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정부가 협상 결과의 비판 여론 극복을 위해 할머니들을 먼저 찾아 협상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정공법을 택했지만, 논란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복동 할머니는 “협상 전에 얘기를 했으면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말이 안 했겠냐”며 “정부끼리 속닥속닥 타결하는 꼴 보려고 싸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타결됐다는 말은 당치도 않다”며 “타결은 아베 일본 총리가 기자들 모아놓고 (공식적으로)자기네들 잘못이니 용서해달라며 사죄하고 일본 교과서 관련 내용도 고쳐야 한다”며 할머니들의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조태열 외교부 2차관도 이날 협상 결과 설명차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을 찾았으나 할머니들의 호통을 피하지 못했다.
이옥선(89)할머니는 “(일본 정부와)몰래 합의했다는 것은 할머니들을 팔아먹은 것”이라며 “일본의 공식사과와 법적 배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받아야겠다”고 했다. 유희남(88) 할머니는 “(정부가)합의하는데 애 많이 쓴 것은 알겠지만, 법적 기준대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며 “할머니들이 크게 대우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닌데 정부에 섭섭하다”며 말했다. 일본 정부가 출자하는 10억엔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조 차관은 “100%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일본 최고 지도자로부터 공개석상에서 사죄를 받은 의미를 한 번 다시 평가해달라”며 할머니들의 이해를 당부했다.
할머니들은 특히 일본 정부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소녀상 이전과 관련해서도 이전 불가 입장을 다시 한 번 못박았다. 이용수 할머니는 “동경 한복판에도 소녀상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고, 김복동 할머니는 “소녀상은 국민들이 한푼 한푼 모아 만든 국민들의 역사”라며 “우리 정부도 소녀상을 치우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1992년부터 진행돼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집회) 역시 지속적으로 이어갈 뜻을 밝혔다. 이용수 할머니는 “건강이 점점 걱정이지만 수요집회는 끝까지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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