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귀 속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외이(外耳)를 통해 중이(中耳)와 내이(內耳)를 거쳐 뇌로 전달된다. 사람은 상대방 말을 듣고 뜻을 이해하게 되는데, 소리가 뇌로 전송되는 과정 중 한 부분(청신경, 내유모세포, 신경원세포 등)에 문제가 생기면 ‘청각신경병증’이라는 난청을 앓게 된다.
청각신경병증은 청력의 손상 정도나 나이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난청 질환으로, 영ㆍ유아 심고도 난청(소리를 잘 듣지 못하고 소리가 나는 사실만 인지하는 상태)의 주 원인이 된다.
청각신경병증으로 심고도 난청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가장 뛰어난 청각재활수단인 인공 와우(蝸牛ㆍ달팽이관)이식수술을 시행한다.
인공 와우 이식술 결과는 청각신경병증을 유발한 병소(病巢)에 따라 다르므로 병소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컨대 청각 신경 자체에 병소가 있다면 청각 신경이 인공 와우에 의해 충분히 자극될 수 없어 와우 이식 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청각 신경에는 문제가 없고 와우와 청각 신경을 연결하는 시냅스(신경간 연결부위)에 병소가 있다면 인공 와우를 통해 청각 신경이 충분히 자극되므로 이식 후 좋은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병소 위치를 찾는 것은 청각 재활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첫 단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영ㆍ유아 청각신경병증은 외국과 달리 청각경로 주위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 정도만 확인됐을 뿐 병소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최병윤 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팀은 한국인 영ㆍ유아 청각신경병증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청각신경병증으로 내원한 심고도 난청 영ㆍ유아 7명을 대상으로 차세대염기서열분석을 통해 최첨단 유전자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7명 중 6명의 청각신경병증 환자에서 OTOF(Otoferlin)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했음을 찾아냈다.
OTOF 유전자는 신경전달물질 분비에 관여하는 단백질 발현 유전자로,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청각신경병증이 나타난다. 다행스럽게도 OTOF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생한 청각신경병증은 와우와 청각 신경 사이 시냅스에 병소가 있어 와우 이식 후 우수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OTOF 유전자 변이로 인한 청각신경병증 난청은 드물다고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영ㆍ유아에서 청각신경병증에 의한 심고도 난청이 나타나면 경험에 기반해 난청 발병 원인과 자연경과 여부 등을 예측했다.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영ㆍ유아 청각신경병증 양상이 나타나는 즉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 시술 결과를 예측하고 더 빠르게 와우 이식을 시행해야 한다는 근거가 마련됐다.
최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난청 영ㆍ유아와 보호자, 의료진 모두에게 더 정확한 청각 재활을 시행하는 계기가 됐으며, 청각재활에 정밀의학을 도입하는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국제 의학 학술지(Medicine) 최근호에 실렸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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