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2015년 국가가 우리사회에 던진 화두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정부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집필 중이다. 역사란 무엇이고, 혼이란 무엇일까. 바름과 그름은 어찌 구분될까. 올 하반기를 뜨겁게 달군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되짚어봤다.
● 국정화 불씨, 누가 던졌나
2013년 6월, 취임 4개월 차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교육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안 된다"고 발언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불씨가 지펴졌다. 그 해 8월, '우편향' 지적을 받았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심사를 최종 통과하고도 역사 왜곡 및 사실 오류 논란에 휩싸여 채택률 0%의 결과가 나오자,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현재의 검인정 한국사교과서를 국정화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청의 노력은 꾸준했다. 2013년 9월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근현대사 연구교실'을 꾸려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식시켜야 한다"고 다짐했고, 11월 정홍원 국무총리는 "다양한 역사관이 있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해선 통일된 교과서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4년 8월, 황우여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역사는 국가가 책임지고 한가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보기)
● 역사전쟁? 이면은 '프레임 전쟁'
올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여야의 '역사전쟁'이 본격화됐다. 먼저 불을 지핀 건 정부다. 메르스 사태가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던 지난 8월, 교육부가 '국정화 카드'를 꺼냈다. 여당은 "좌편향 교과서를 시정해야 한다"며 지지했고, 야당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해선 안 된다"고 맞섰다. 표면적으로는 역사교과서의 검정제도를 유지하느냐 국정제로 전환하느냐의 논의였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프레임 싸움에 돌입했다는 해석이 나왔다.(▶기사보기)
국정화 국면을 계기로 우리사회의 이념 대결은 심화됐다. 교육부의 국정화 움직임에 역사학자들은 다양성을 포기하는 일이라며 교과서 집필을 거부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라고 했고, 국민들은 국정화에 반대하며 촛불을 들었다. 보수 진영에서도 "교과서를 국정화해야만 역사 교육이 바로 선다는 주장은 시대에 동떨어진 얘기"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11월3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속전속결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다. (▶기사보기)
● "역사는 혼" 이라는 대통령
국론이 분열되고 국회가 마비되는 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정화가 강행된 배경에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있었다. 국정화 확정 이후에도 '복면 집필진' 파문에 반대 여론이 거세자 박 대통령은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魂)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국정화 명분'을 강경한 메시지로 설명했다.
'혼이 비정상'이라는 말은 통상적이지 않은 화법이지만, '혼'은 박 대통령의 역사인식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다. 박 대통령은 201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며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역사가 혼이라면 역사 교육은 영혼을 가르치는 일인 셈이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미래세대의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은 결국 다름을 배제하는 '비정상의 정상화'와 맞닿아 있다. (▶칼럼보기)
그렇다면, 정치권이 역사전쟁에 몰두하는 이유는 뭘까. 현재 보수진영의 생각은 이렇다. 좌파성향의 학자들이 역사 학계를 장악했으며, 곧 유권자 지위를 얻게 되는 청소년들이 역사교육을 통해 '좌파성향'으로 세뇌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진보진영은 국정화 교과서가 친일보다는 반공, 독재보다는 경제성장에 방점을 찍어 친일독재세력이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음모로 여긴다. 역사전쟁이 보혁갈등으로 번지는 이유다. (▶칼럼보기)
● “역사란…” 국정화에 응답하다
영국의 역사학자 E.H.카는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정치권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과거의 늪에서 헤매는 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성명서를 냈고, 중고등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촛불을 들었다. 대학생들은 재기 발랄한 대자보로 동참했다.( ▶기사보기) 이는 11월 14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청년·노동·농민·소수자 등 10만 여명(경찰 추산은 4만 여명)이 참석한 ‘민중총궐기 대회’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제 청소년들은 2017년 1학기부터 '하나의 역사'를 배우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국정교과서를 만들면서 집필진도 공개하지 않아 ‘복면집필’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편찬기준 발표도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국정화 작업에 대한 논란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사상은 역사가 몇 사람이 교과서 만들어 교육시킨다고 바뀌진 않는다”며 “(국정화 반대 여론을) 10년만 끌고 간다면 검인정마저 탈피해 자유화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보기)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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