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협상 합의로 국제사회에 발간 못해 애물단지 전락 우려
정부가 수억 원을 들여 준비해 온 위안부 백서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死藏)될 것으로 보인다. 28일 위안부 협상을 타결하면서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을 자제한다’고 합의한 만큼 과거 잘못을 지적하는 백서를 발간하면 일본측에 발목을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30일 “위안부 백서 초안이 다 완성돼 막바지 작업만 하면 되는데 덜컥 위안부 합의가 발표돼 어찌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며 “당초 내년 초 발간을 목표로 했지만 현재로선 어떻게 마무리할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위안부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지난 5월 민관 합동 광복70년 기념사업회의 주요 사업으로 백서를 만들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기존의 천안함 백서나 외교 백서와 같이 ‘사안을 분석해 널리 알린다’는 의미의 백서(白書)라는 형식을 통해 다양한 사료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고스란히 담아 일본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객관적이고 명백하게 밝혀내기 위해서였다.
이에 정부는 초안 작성을 위한 민간연구용역과 발간비용으로 4억6,000만원을 배정해 사업을 추진해왔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번역해 전세계에 배포할 계획도 세웠다. 특히 위안부 백서가 발간되면 반인도주의적 범죄인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에 대해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의 공감대를 확산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일본측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한 소녀상 못지 않게 정부가 발간할 위안부 백서에도 잔뜩 경계심을 드러내며 진행상황을 추적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로 백서 발간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이에 대국민 보고서 형식으로 국내에서 한글 본만 발간하는 방식도 거론되지만 당초 전세계를 겨냥했던 백서로서의 가치와 의미는 이미 빛이 바랜 상황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주도해 온 백서 발간작업이 미완의 과제로 남을 경우 위안부 동원의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려는 민간차원의 노력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다른 소식통은 “백서에 담길 자료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정부가 속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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