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과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 출연금을 연계하는 것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강한 의사라고 일본 언론들이 31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이날 “소녀상이 철거되지 않는다면 한국과 합의한 10억엔을 출연하지 않을 의향을 일본 정부가 가지고 있다”면서 “이는 아베 총리의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소녀상 철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부담을 안게 되면 일본 국내 여론의 이해를 얻을 수 없다고 아베 정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지통신 역시 이날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소녀상이 철거되지 않는 한 자금을 낼 수 없다는 것이 총리의 의향”이라고 보도했다. 산케이 신문도 이날 소녀상을 철거할 때까지 위안부 지원 재단에 10억 엔의 예산을 출연하지 않을 방침을 굳혔다고 전했다.
일본이 소녀상 철거와 자금 출연을 연계하게 되면 합의 이행이 미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베 총리는 1월 4일 일본 정기국회가 개회하면 소녀상 철거와 재단 출연에 대해 질문을 받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일본 시민단체들은 아베 총리에게 본인이 직접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표명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일본 외무장관이 대신 발표한 메시지로는 부족하다고 압박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본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은 31일 “피해자가 사죄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재차 총리 자신이 공식적으로 (사죄를) 표명하라”고 요구했다. 이 같은 요구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장관이 지난 28일 한일외교장관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의 사죄를 대신 낭독한 것으로 더 이상 사죄는 없다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문제 삼은 것이다.
당시 기시다 장관은 “아베 총리는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메시지를 대신 읽었다.
전국행동은 한일 정부간 합의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와의 협의가 없었다고 지적하고 “피해자 부재의 ‘타결’은 ‘해결’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양국간 합의에 포함된 데 대해 “제멋대로 합의하는 것은 피해자를 다시 모독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일본의 책임이나 고노(河野)담화에서 인정한 사실에 반하는 발언을 공인이 하는 경우 단호하게 반박하고,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에 대해서도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향후 교육과정에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시키는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요청했다.
전후(戰後) 보상과 재일한인 문제에 관여해온 변호사 37명도 성명을 통해 “가해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책임을 인정하면서 진심으로 사죄하고, 사죄의 증표로서 배상 등의 구체적 조치를 실시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여성을 위한 전쟁과 평화자료관’ 와타나베 미나(渡邊美柰) 사무국장은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정부 예산을 들이는 점은 사죄의 증거로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외무장관이 총리로서의 사죄와 반성을 대신했다. 피해자가 정말 사죄한 것으로 수용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에겐 사실 인정이 매우 중요한데,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인 평화의 비(소녀상) 철거를 요구해 진심으로 피해자 치유를 원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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