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 전역에서 벌어지는 이상 고온과 집중 호우 등의 원인인 엘니뇨(동태평양 적도 해수면 온도 상승) 현상이 미국 중서부 지역에 사상 최악의 홍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리노이 주에서 미주리, 텍사스 주 북부까지 걸친 영역에 지난 주말 이후 집중 호우가 쏟아지면서 이 일대를 흐르는 미시시피 강 지류와 본류가 범람해 1,7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사상 최악의’홍수로 기록될 전망이다.
30일 워싱턴포스트와 CNN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최근 나흘 새 평균 150~300㎜에 달하는 호우가 쏟아지면서 중부 지역 400개 강의 수위가 홍수 수위를 이미 넘었다. 미국 기상청은 특히 45개 강의 수위는 유례없는 대홍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홍수경보가 내려진 강 대부분이 통과하는 미주리 주는 최악의 비상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부르버즈 강, 메러멕 강, 미시시피 강은 홍수 경계수위보다 3~8m 이상 높아진 상태다. 체스터 시를 휘감는 미시시피 강의 수위는 가장 높은 15m로 관측됐고, 유레카 시를 통과하는 메러멕 강의 수위도 14m로 측정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지역에 추가로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어 강물 수위가 31일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이번 사태의 최대 고비는 31일 전후가 될 전망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미주리 주정부는 강물 범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주리 주 기상 당국도 역대 최악의 홍수 피해 발생가능성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지난 27일 미주리 주 일원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제이 닉슨 미주리 주지사는 “강물이 이렇게 불어난 걸 보지 못했다”면서 “미시시피 강이 범람한 1993년 대홍수의 재해 기록을 넘어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다만 “물빼기 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복구 작업을 곧 시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미주리 주는 홍수 경보로 이재민이 떠난 지역에 주 방위군을 투입해 지역 안전을 도모하는 한편, 자원봉사자와 함께 강둑에 모래를 쌓아 추가 피해를 막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주말 이후 계속된 호우와 토네이도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성탄절 연휴 이후 미국 중서부에서 최소 49명이 숨졌는데, 미주리 주(13명)와 텍사스 주(11명)에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사망자 대부분은 야간에 차를 몰던 운전자들로, 불어난 강물이 엄습하는 줄 미처 모르고 도로 위를 달렸다가 강물에 휩쓸리거나 오도 가도 못해 익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산피해도 막심하다. 현재 미주리 주를 필두로 주 정부가 내린 홍수 경보로 집을 떠난 이재민은 미국 전역에서 1,700만 명에 달하는 상태다. 기상 당국 예상대로 실제로 대형 홍수가 발생, 주요 도시가 물에 잠길 경우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
한편 1998년 발생했던 ‘슈퍼 엘니뇨’ 이후 최대인 이번 엘니뇨로 북극, 영국, 아이슬란드 등 북반구 곳곳에서 이상 기상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서 발생한 폭풍으로 따뜻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북극 기온이 예년보다 섭씨 10도나 상승했고, 영국에서는 수 주째 폭우가 이어져 홍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12월에만 예년 평균(24개)보다 세 배 가까이 많은 최소 69개 토네이도가 발생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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