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두 남녀가 스크린을 연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가 헤어진 게 분명한 백발의 두 사람 얼굴엔 표정이 거의 없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 교제하게 된 과정, 함께 했던 수 많은 시간들을 돌아보는 사이사이 엷은 미소와 짧은 한숨이 끼어든다. 황혼에 이른 두 남녀의 인생 돌아보기는 사뭇 흥미롭긴 하나 85분의 상영시간을 채우기엔 힘이 부쳐 보인다. 하지만 두 남녀가 탱고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면 관객들의 호기심은 크게 부풀어오를 만도 하다.
아르헨티나 영화 ‘라스트 탱고’는 유명 탱고 댄서 마리아 니브 리고(77)와 후안 카를로스 코페스(84)의 삶을 되돌아본다. 탱고를 전승하고 발전시킨 두 사람의 행적은 현대 탱고의 역사다. 둘은 뒷골목 여흥에 불과했던 탱고를 스포트라이트 쏟아지는 공연 무대위로 옮겨 놓았다. 둘이 빚어낸 조화로운 몸동작을 디딤돌 삼아 탱고 율동은 세계 곳곳에 이르렀다.
영화는 10대 시절 우연히 한 클럽에서 조우한 두 사람이 탱고를 매개로 사랑을 키우고 갈등을 빚으며 이별과 결합을 반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함께 했던 순간들은 탱고라는 촉매제 덕분에 사적 시간이 아닌 역사적 사건들로 기록된다.
젊은 배우들이 두 사람의 회고를 스크린에서 형상화하고, 빛이 바랜 기록 화면이 곧잘 끼어든다. 탱고의 퇴조를 막기 위해 탁자 위 안무를 고안했던 두 사람의 사연, 여자들과의 잠자리를 당연한 혜택으로 여기는 후안과 이런 후안을 혐오하는 마리아의 갈등, 모두의 예상대로 결혼했으나 결국 파국에 이른 두 사람의 애증이 빠르게 스크린 위를 흐른다.
마음의 골이 깊은 상황에서도 농밀한 춤인 탱고를 춰야 했던 두 사람의 과거, 헤어졌으나 결국 주변 사람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탱고 때문에 결합한 두 사람의 사연 등이 흥미롭다. 노년의 후안이 마리아와 다시 춤사위를 맞춘 표면적인 이유는 마리아처럼 호흡이 완벽하게 맞는 파트너가 없어서다. 후안에 이끌려 탱고에 입문하고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한 마리아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회고한다. “다시 태어나도 탱고와 함께 하고 싶다. 후안만 빼고.” 마리아는 후안이 있어야만 자신의 탱고가 완성된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후안이란 존재를 완강히 거부한다. 강한 증오 속에 깃든 아련한 연심이 엿보인다.
격정의 음악을 들으며 정밀한 몸동작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과 귀가 호강한다. 짧은 시간 알차게 탱고의 역사를 훑는 덤까지 얻을 수 있다. 31일 개봉했다. 감독 게르만 크랄, 12세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예고편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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