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진규
“야, 이 썩을 놈아! 시끄럽다고 몇 번이나 말하노? 어이?”
현관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며 욕할매가 고함을 친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문도 열어보지 않는다. 저러다가 시들해져 집에 간 적이 많아 이제 신경도 안 쓴다. 욕할매는 우리 아래층, 401호에 산다. 80살도 넘었다는데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밖에서 소리를 지르면 우리 집이 쿵쿵 울리는 것 같다. 우리가 이사 오던 날부터 이삿짐 나르는 사다리차가 시끄럽다고 난리였다.
“허구헌 날 다 나뚜고 우짠 일로 이 늦은 시간에 이사를 해 쌌소?”
“죄송해요. 저희 부부가 다 일을 다니다 보니 이 시간에 할 수밖에 없네요.”
우리가 이사를 하는 시간이 저녁때인 것은 맞다. 하지만 깜깜한 한밤중도 아닌데 뭐 그리 난리 법석을 할 일은 아니다. 욕할매는 이삿짐 나르는데 불쑥 들어와서 한바탕 하고 갔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우리 집 가훈은 ‘살금살금, 조용조용’이 된 것 같았다.
“아래층 할머니 너무 하신 거 아녜요?”
엄마는 부엌을 정리하며 이야기했다.
“우리가 좀 참아요. 나이 드시면 예민해지시기도 해요.”
“나이 드시면 귀가 어두워져야 하는 것 아닌가?”
엄마 말이 맞다. 나이를 먹으면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했는데 아랫집 할머니는 주름만 있을 뿐 귀는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것 같았다.
욕할매는 그 후로도 우리 집을 자기 집 드나들 듯 했다. 식탁 의자를 조금만 소리 나게 끌어도 올라왔고, 텔레비전 소리를 조금만 크게 해도, 좀 늦은 시간에 세탁기를 돌려도 올라왔다.
“아, 정말. 너무 하네 너무해. 이 아파트가 다 자기 건가 뭐?”
욕할매가 돌아간 후 엄마가 일부러 그릇들을 소리 나게 하며 설거지를 했다. 아빠는 아무리 그래도 어른인데 우리가 참자며 엄마를 달랬다. 엄마는 욕할매 앞에서는 아무 말도 안했지만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일이 난 것은 찬우가 놀러 왔던 날이다. 찬우는 이사 오기 전에 같은 동에 살던 내 절친이다. 바로 옆 단지이긴 하지만 지난봄에 이사를 온 이후로 찬우와 같이 노는 것은 오래간만이다. 밖에서 신 나게 자전거를 타고 들어온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텔레비전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 욕할매가 문을 두드린 것이다.
“이노무 자슥아, 니 집에 있재? 내, 니 있는 거 다 안다. 니 퍼뜩 나와서 ‘잘못했습니다’카고 안 비나?”
저러다가 다시 내려가겠지 하고 못들은 척했다.
“동현아, 안 나가 봐도 돼? 저 할머니 문 부술 것 같아.”
“저러다가 그냥 내려가. 욕할매는 원래 그래.”
내가 현관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욕할매?”
찬우는 무슨 뜻이냐며 내게 물었다.
“응, 하도 자주 와서 욕을 해서 그렇게 불러.”
그때였다. 욕을 넘어 협박하는 소리가 내 귀에 와 꽂혔다.
“니, 안 나오믄 자전거 바꾸 다 빵꾸 내삔대이.”
자전거? 자전거는 안 된다. 엄마를 몇 달이나 졸라서 산 건데 펑크를 내겠다고? 나는 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욕할매가 정말 자전거 바퀴에 펑크를 내려는 듯 타이어를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날 보더니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구부정한 허리를 폈다.
“야 이눔아야, 어른이 부르마 퍼뜩 나와가 ‘아이고 할머니, 잘못했어요’ 하고 빌 것이지. 버티길 어댈 버티노?”
욕할매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가 피할 틈도 없이 내 귀를 잡아 쥐었다. 그리고는 인정사정없이 비틀었다.
“아, 아! 아파요. 아, 이거 놓고 말해요. 아! 아야!”
욕할매는 손가락에 힘을 뺐지만 여전히 내 귀를 잡고 있었다.
“니, 뛰었나? 안 뛰었나?”
“안 뛰었어요.”
욕할매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다시 묻는데이. 뛰었나? 안 뛰었나?”
“아, 정말 안 뛰었어요. 우린 그냥 텔레비전 보고 있었어요.”
“뭐라꼬? 그라믄 쿵쿵 소리는 하늘이 냈단 말이가? 땅이 냈단 말이가?”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찬우가 그랬다. 개그맨 한 명이 다른 사람을 때리려고 하는데 자꾸만 자기가 맞는 모습을 보며 방바닥을 발로 구르며 웃은 것은 찬우다. 그걸 뛰었다고 하는 모양이다.
“아, 그거는 그냥 발로 방바닥 한 두 번 친 거예요. 정말 안 뛰었어요.”
“그래서 지금 잘했다, 이 말이가?”
“그리고 그건 제가 한 것도 아니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욕할매가 다시 손에 힘을 주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고요.”
“니, 한 번만 또 뛰마 내 경찰에 신고 할 끼다. 알았나?”
욕할매는 아직 화가 안 풀렸는지 씩씩거리며 내려갔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완전 막무가내다. 찬우는 어느새 텔레비전을 끄고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너, 괜찮아?”
“아이씨, 아파.”
나는 귀를 문질렀다.
“귀 엄청 빨개.”
거울을 봤다. 왼쪽 귀만 빨갰다. 게다가 부은 것 같기도 했다. 얼마나 세게 잡혔는지 욱신거리기까지 했다. 찬우는 집에 가야겠다며 살금살금 걸어 나갔다. 현관문을 닫을 때도 소리가 안 나게 살짝 닫았다.
그날 저녁,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아랫집 욕할매를 찾아갔다. 아빠는 엄마를 말렸지만 화가 난 엄마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나를 앞세워 401호로 내려갔다. 하지만, 욕할매는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초인종 아래에 붙어 있는 스피커로 목소리만 흘러 나왔다.
“우리 집에 환자가 있응께 고마 시끄럽지 않게 그 집에서 조심하소.”
엄마가 다시 초인종을 눌렀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아마 인터폰을 빼 버린 것 같았다.
“와, 정말 말이 안 통하는 할머니네. 내 참 더러워서.”
집에 돌아 온 엄마는 찬물을 두 잔이나 마셨다.
“아, 그러게 뭐 하러 내려가요?”
“동현이 귀 안 보여요? 당신은 속상하지도 않아요?”
사실 내 귀는 벌써 원래대로 돌아왔다. 엄마 눈에만 빨갛고, 부어있는 모양이다. 아빠는 보고 있던 책장만 넘길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자기 자식 귀한 줄은 모르고 만날 책만 들여다보고…….”
다음날부터 우리 집은 바닥에 유리라도 깔아 놓은 것처럼 살금살금 걸어 다녔다. 식탁 의자도 들어서 옮겼고 학교에서 돌아와서 가방도 살짝 내려놓았다. 일단 며칠만 할머니 심기를 건들지 않으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게 아빠의 의견이었다.
우리 집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집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집에 있으면 숨 쉬기도 힘들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욕할매에게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봤던 탐정처럼 팔짱을 끼고 거실을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나는 오른손 중지와 엄지를 부딪쳤다. “딱”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소리가 났으면 더 폼이 났겠지만 안 나도 상관은 없다.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사전 조사는 필수다. 나는 문을 열고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갔다. 401호 현관문에 귀를 대 보았다.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욕할매가 집에 있다는 증거다. 나는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일단 엘리베이터의 내려가는 방향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어놓았다. 방에 들어가서 가방을 멨다. 거실 가운데쯤에서 나는 심호흡을 했다.
“하나, 둘, 셋!”
나는 무릎을 굽혔다가 위로 뛰어 올랐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재빨리 신발을 신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문 닫힘, 1층, 문 열림 버튼을 차례로 누르고 밖으로 나갔다. 놀이터에 있다가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금쯤 우리 집 앞에서 씩씩거리며 화를 내고 있을 욕할매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욕할매는 우리 집 문을 부서져라 탕탕 두드리며
“야 이노무 자슥아, 내가 뛰지 말라고 캤나? 안 캤나? 니 당장 나온나”라고 할 것이다. 그 때 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무슨 일이냐고 아주 태연하게 욕할매에게 묻는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그러자 욕할매는 놀란 눈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니 집에 없었나? 내 분명 뛰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상하네”하며 집으로 내려간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집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어디를 봐도 욕할매는 없었다. 기껏 계획한 일인데 욕할매가 없으니 허탈했다. 집으로 들어가 다시 거실에서 뛰어봤지만 욕할매는 올라오지 않았다.
“분명 아까 말소리가 들렸는데.”
그날 이후로 욕할매는 우리 집에 올라오지 않았다. 전에는 가끔 놀이터나 아파트 입구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욕할매를 피해 돌아다녔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욕할매가 사라진 것이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이사 간 것 같다고 했고, 아빠는 며칠 지나면 나아진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엄마를 타박했다. 이사를 가는 것이었으면 사다리차 소리가 났을 것이다. 그렇게 금방 나아질 것이었으면 매일같이 올라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 집에 다시 평화가 찾아 온 것이 다행스럽기만 했다.
오늘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놀이터에 욕할매가 혼자 앉아 있었다. 어딜 보는지도 모르게 초점 없는 눈이었다.
“어, 욕할매다.”
나도 모르게 욕할매를 보고 달려가다가 멈추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또 무슨 욕을 먹으려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욕할매가 눈치 채지 못하게 욕할매를 피해 옆으로 돌아갔다. 욕할매와 멀어지기 시작할 즈음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야!”
욕할매였다. 나를 보고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생각은 했지만 정말 부를 줄은 몰랐다. 복수한다고 거실 바닥을 쿵쿵 굴렀던 것이 찔려 뜨끔했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저… 저요? 아, 왜요?”
나는 신경질을 내며 물었다.
“그래. 니 말이다. 일루 좀 와 봐라.”
이상한 힘이 나를 욕할매 옆으로 끌어당겼다. 머리에서는 “가지 마”하는데 몸은 가고 있었다.
“앉아라.”
욕할매가 원격조종을 하고 나는 조종을 당하는 로봇이 된 것처럼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욕할매가 막대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물래?”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할매가 주는 건 받는기라. 받아라.”
나는 아무 말 없이 사탕을 받았다.
“우리 언니야가 있었는기라. 아부지 어무이는 어려서 돌아가시고 언니야가 내한테는 아부지고 어무이였지.”
욕할매와 같이 있는 것도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데 밑도 끝도 없이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노망이 났나?’하고 생각했다. 욕할매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을에 커다란 동구나무가 있었다. 동구나무 아래로는 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판이 있었다. 삼례가 소꿉장난을 하는 곳이었고, 마을의 입구이기도 했다. 그날도 동구나무 아래에서 삼례는 소꿉을 가지고 놀고 언니는 커다란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읍내로 가는 길이었다.
“언니가 이거 갖다 주고 눈깔사탕 사다 줄끼구마.”
“언니야, 정말이가? 눈깔사탕 정말 사올끼가?”
삼례는 언덕 너머로 언니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꼼짝 안하고 서 있었다. 읍내까지 10리가 조금 넘는 길이니 반나절이면 돌아올 것이다. 그동안 삼례는 아무데도 안 가고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니는 깜깜한 밤중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사탕을 사서 돌아오겠다는 삼례 언니는 삯바느질 한 것을 들고 가다가 일본 군인들에게 잡혀 트럭에 태워졌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트럭에 실려 밤새 달려 바닷가 항구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또 며칠을 멀미와 싸워가며 도착한 곳은 전쟁터였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전쟁터. 그곳에서 삼례의 언니는 조그만 방에 갇혀 지냈다. 며칠을 그렇게 갇혀 지냈다. 가끔 방문이 열리고 겨우 목숨을 이어갈 정도의 밥이 주어졌다. 그날도 평소처럼 문이 열렸다. 하지만 방에는 밥 대신 일본 군인이 들어왔다. 군인은 한참 후에 방을 나갔고 또 다른 군인이 들어왔다. 언니의 몸과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언니는 점점 지쳐갔다. 삼례에게 사탕을 사다 주겠다는 약속은 영원히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언니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죽으려고 시도도 해 보았다. 하지만, 목숨이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있던 일본군 기지에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언니는 도망쳤다. 뒤를 돌아보면 무서워서 앞만 보고 뛰었다. 여기저기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콰앙 쾅!”
욕할매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나는 말을 안 했지만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 눈으로 물었다.
“2년 전에 테레비 뉴스에서 언니를 봤재. 수요집횐가 뭔가 하는기 나오는디 거기 언니가 있는기라. 얼굴에 주름이 늘었어도 언닌 거를 한눈에 알아봤재. 당장에 아들놈에게 전화를 해가 ‘야야, 너거 이모를 찾았다. 퍼뜩 방송국에 전화 해보그래이’했지.”
“만날 시끄럽다고 뭐라 캐서 미안테이. 언니가 마이 아팠대이. 쬐깐한 소리만 나도 ‘공습이다’ 해카믄서 구석으로 숨는데….”
욕할매는 아니, 할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평소의 성질 더럽던 욕할매가 아니었다. 그럼 401호에 할머니의 언니도 함께 있었단 말인가? 몸도 아프시고? 갑자기 할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 며칠 전에는 죄송했어요. 할머니가 자꾸 뭐라고 하시니까 화가 나서 그런 건데.”
“야가 뭐라카노?”
할머니는 진정이 되었는지 울음을 멈추었다.
“우리 언니야가 인제 조용한 곳으로 갔대이. 오늘 언니야를 고향 땅 동구나무 아래에 뿌려주고 오는 길이다. 내는 가는귀가 먹어가 전쟁이 나도 모른대이. 실컷 뛰고 놀거래이. 어릴 때는 그기 최곤기라.”
할머니는 “에구구구”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할머니 팔을 잡아주려고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70년 전 삼례가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듯이. 내 손에는 욕할매가 주고 간 막대사탕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다시 혼자가 된 욕할매처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