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란 거짓말이 난무하는 ‘허언(虛言)의 무대’일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팽팽한 이해의 제로섬게임을 유리하게 이끌려다 보니 상대를 속이는 교언영색조차 정당화된다. 소설이지만 ‘삼국지’ 오(吳)의 제독 주유를 상대로 한 촉(蜀) 제갈공명의 외교만 해도 그렇다. 위(魏)의 조조 공세로 촉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어떻게든 오를 전쟁에 끌어들여 위에 함께 맞서야 했다. 하지만 오의 실세인 주유가 실익 없는 싸움이라며 참전에 반대했다.
▦ 주유를 만난 공명의 외교적 승부수는 뜻밖에 ‘동작대부(銅雀臺賦)’라는 시 한 수였다. 조조가 별궁으로 지은 동작대를 칭송한 아들 조식의 작품이라고 했다. 원래 ‘두 다리(二橋)를 동서로 이어 무지개처럼 하늘에 걸려 있다’는 끝부분을 ‘이교(二喬)를 동남에서 데려와 함께 즐기리라’로 교묘히 바꿔 읊었다. 이교는 오의 최고 미인으로 꼽히던 자매로, 대교(大喬)는 당시 오왕 손권의 형 손책의 부인이고, 소교(小喬)는 다름아닌 주유의 부인이었으니, 시를 들은 주유는 마침내 격노하여 참전을 결심하게 된다.
▦ 외교적 거짓말은 내부를 향하기도 한다. 내부에선 100을 원하지만 50이 고작일 수밖에 없는 외교적 합의의 본질이 빚게 되는 기대와 현실의 간극 때문이다. 김성한 선생의 소설 ‘임진왜란’에는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일본에 대한 조선의 항복을 주선하는 ‘입조(入朝)외교’를 떠맡고 전전긍긍하는 대목이 나온다. 결국 산천초목도 벌벌 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앞에서 ‘조선 왕이 뜻은 있지만 몸이 아파 직접 오지는 못한다’는 거짓말까지 하지만 토요토미에게 간파돼 대마도 대신이 처형되기에 이른다.
▦ 최근 위안부협상 후폭풍도 어찌 보면 자국민에게 합의를 호도하려는 양국 외교당국의 ‘내부용 거짓말’ 때문에 더 거세지는 것 같다. ‘정부 책임’을 인정한 일본 정부로서는 애써 ‘불가역적 합의’나, 소녀상 이전 논의를 부각시키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 역시 “불가역적 합의라는 표현은 (일본의 딴소리를 막기 위해)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는 뻔한 거짓말까지 흘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이해한다 해도, 기다렸다는 듯 “불가역적 합의 약속을 어기면 (한국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끝난다”는 막말까지 내뱉는 아베 총리의 얄팍한 처신은 괘씸할 뿐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