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지도자 등 47명을 집단 처형하면서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가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양국간 외교 단절은 1991년 외교 관계를 회복한 지 25년 만이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3일(현지 시간)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한다”며 “사우디 주재 모든 이란 외교관은 48 시간 내에 본국으로 떠나라”고 밝혔다. 이 같은 조치는 지난 2일 사우디가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 등 반정부 시아파 유력 인사 4명을 테러혐의로 처형하자, 이란 시위대가 사우디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공격 방화한 데 따른 것이다. 알주바이르 장관은 “이란이 사우디 안보를 해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수니파 왕정 6개국 모임인 걸프협력회의(GCC)도 이란의 사우디 대사관 공격을 비난하며 사우디에 힘을 실었고, 역시 수니파 국가들의 모임인 아랍연맹(AL)과 이슬람협력기구(OIC)도 “사우디의 대테러 정책을 지지한다”며 거들었다. 수니파가 지배층을 이루는 바레인도 사우디에 이어 4일 이란과 외교관계를 단절하겠다고 밝혔다.
이란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 외교차관은 “이란 주재 사우디 외교관 중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다”며 “사우디가 단교로 그들의 잘못(집단 처형)을 덮으려 한다”라고 반박했다. 국제적 비정부기구인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도 “어떤 상황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사우디를 비판했다. 영국에서는 “사우디를 유엔 국제인권위원회에 제소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4일 전했다. 일각에서는 특히 “집단 처형된 47명중 2명은 체포 시점 기준 미성년자였으며, 체포 후에 2년 동안 변호사 조차 선임하지 못했다”는 주장까지 나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4일 새벽에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힐라 지역 수니파 모스크 두 곳에서 폭탄이 터지는 등 양국의 갈등이 중동 내 수니파 대 시아파 간의 폭력으로 비화되는 모습이다. 이라크 당국자는 “군복 차림의 무리가 폭탄을 터트렸으며, 모스크 관계자 한 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3일 밤에는 처형된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의 사우디 고향 마을에서 사우디 경찰관들이 총격을 당했다고 사우디 SPA통신이 보도했다.
중동 내 두 맹주의 갈등이 중동 내 수니-시아 간 종교 갈등으로 확대되자, 국제 사회는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존 커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3일 “직접 대화가 중요하다”며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미국은 이번 양국 갈등이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소탕 작전 및 시리아 내전 해결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하고 있다. 유럽연합도 “중동 지역 갈등과 균열에 걱정이 커졌다”고 밝혔다.
집단 처형, 외교 단절 등 사우디의 잇단 ‘초강수’는 “정치ㆍ경제 난관으로 불안해진 국내 위기를 종파 갈등으로 돌파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이란 핵협상를 통해 국제사회에 다시 등장한 이란과, 이를 돕고 있는 서방에 대한 사우디의 불편한 심기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양국은 1988년에도 3년 동안 단교한 적이 있다. 1987년 사우디 메카 성지 순례에서 순례객과 사우디 경찰이 충돌, 이란인 275명을 포함한 400여명의 순례자가 사망하면서다. 당시에는 1980년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 때 사우디가 이라크의 수니파 정권인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면서 사우디-이란간 감정이 격해진 시기였다. 이 순례자 사망 사고로 테헤란 시위대가 주 이란 사우디 대사관을 점거, 사우디 외교관 한 명이 대사관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하면서 갈등이 극에 달했다. 여기에 이란 호메이니가 사우디 건국이념인 ‘와하비즘’을 이단이라고 비난하면서 결국 1988년 4월 양국은 단교를 선언했고, 1991년에야 외교 관계를 회복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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