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는커녕 고통만 늘리는 상황이 길어지고 있다. 새해 들어 선거구 획정이나 쟁점법안이 여야의 서로 다른 정치적 계산에 발목 잡혀 처리 전망이 더욱 흐려진 것은 새삼 지적하기도 입이 아프다. 심지어 이런 분위기를 틈탄 여야의 무관심으로 특별한 이견도 없는 법안의 개정마저 불발, 한시 규정의 실효에 따른 법적 보호장치에 구멍이 뚫리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 예가 대부업법 개정안이다. 이 개정안은 대부업체의 법정 최고 금리를 현행 연 34.9%에서 연 29.9%로 인하하는 게 골자다. 여야 모두 반대하지 않은 개정안이지만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문제는 대부업체의 최고 금리 한도를 정한 대부업법 관련 규정이 지난해 말까지만 적용되는 한시(限時) 조항이어서 현재 아무런 관련 법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대부업체들이 이런 법률 공백을 틈타 서민층에 연 35% 이상의 고금리를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실태 점검 등에 나섰다. 금융당국의 이런 대응은 비교적 규모가 큰 대부업체에는 어느 정도 심리적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영세업체의 고리대금 욕구를 틀어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6월말 현재 대부업체의 대출잔액은 12조원이 넘었고, 이는 2014년 말에 비해 6개월 사이에 1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은행권은 물론이고 제2금융권에서조차 돈을 빌릴 수 없는 서민층의 대부업체 이용이 크게 늘어난 것이어서 정책ㆍ법적 보호장치가 그만큼 시급한 실정이다. 그런데도 말로는 국민, 개중에서도 서민층을 위한 정치를 앞장세워온 여야가 대부업법 개정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바람에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의 이른바 ‘비쟁점법안’ 처리에서도 빠졌다. 그 결과 연 34.9%라는 법적 금리 상한선은 오간 데가 없어졌다.
현재 선거구 획정이나 노동5법 등 쟁점법안을 둘러싼 여야 협상이 제자리를 맴도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치적 이해타산의 차이다. 각각의 표밭 지역구를 하나라도 더 살리려는 줄다리기에 덧붙여 한 석이라도 더 얻을 수 있거나 상대방이 얻을 수 없게 하려는 비례대표 선출 방식의 이견이 적절한 타협을 가로막고 있다. 상대방을 겨냥한 여야 각각의 이런 이해타산과 함께 내부의 정치적 이해 갈등 또한 여야의 무성의한 협상 태도를 부채질하고 있다. 여당은 공천 방식을 두고 갈등을 거듭하고, 야당은 공천 주도권 다툼에서 비롯한 분열사태에 휘말렸으니 운신의 폭이 좁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게 금배지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100일도 남지 않은 20대 총선까지 이대로 치를 심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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