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시아파 지도자 처형으로 촉발된 사우디 이란 갈등이 중동 이슬람권 국가들의 편가르기로 번지면서 위기감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양국 모두 총공세에 나서기에는 약점을 가지고 있어 파국적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우디는 4일 “이란과 교역은 물론 항공편 운항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바레인과 수단은 이날 이란과의 외교 단절에 동참해 외교관들을 추방했고 아랍에미리트는 이란 대사를 대사급에서 대리대사(공사)급으로 격을 낮췄다. 수니파의 외교 단결에 맞서 이라크, 바레인 등 시아파가 많은 국가에서는 사우디 규탄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져 지역 내 종파간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서방국들은 물론 유엔까지 나서서 양국에 자제를 촉구하고 있지만, 사우디는 중동 내 수니파 국가들을 막후 조정해 외교 공세를 강화하며 이란을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에게는 취약점이 있다. 우선 사건의 발단이 된 집단 처형 행위에 대해 국제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되는 사우디는 매년 세계 최다 수준의 사형 집행 건수를 기록해 국제 사회에서 우려를 자아냈다. 실제로 집단 처형 사실이 알려진 지난 4일 영국 언론들은 “사형 집행 중 일부 공개 참수 형태로 이뤄진 점에 대해서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또 처형된 47명 중 4명이 비폭력 투쟁을 주장해 오던 시아파 지도자였다는 점에서도 ‘소수파 탄압’ ‘종파 갈등 조장’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란 역시 자충수를 두는 바람에 국제적 동조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우디의 집단 처형 행위를 비난하면서도 “이란 내 과격 시위대가 자국 주재 사우디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습격 방화함으로써, 집단 처형을 이유로 사우디를 공격할 명분을 잃었다”라고 지적했다. ‘시위 변수’가 없었다면, 비난은 집단 처형을 자행한 사우디에 집중됐을 것이고, 이란이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이란 시위대가 사우디 공관을 습격ㆍ방화한 것이 ‘자살골’이 됐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지난해 7월 국제 사회와 어렵사리 핵 합의를 맺은 이란이 경제제재 해제를 코 앞에 두고 또다시 ‘고립’이라는 가시밭 길을 선택하기도 쉽지 않다. 인구가 사우디의 2.6배(8,180만명)에 달하고 원유 보유량도 풍부한 이란이 경제력까지 갖추면, 중동 최강자인 사우디를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란 내부적으로도 오는 2월 26일 총선 및 최고 지도자 선출을 앞두고 있어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온건 중도세력이 자신들의 성과와 향후 영향력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지즈 샤모하마디 이란국가안보위원회 전 고문은 “이란 국민들은 평화를 원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도 평화 노선을 따르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3년 전 대선에서 로하니 대통령에 패배한 강경파들이 ‘사우디와의 무력 충돌’을 선거에 악용할 가능성은 변수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우디와의 위기감이 고조될 수록 강경파가 선거에서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