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정면충돌로 중동 정세에 먹구름이 드리운 가운데 ‘사우디 왕정 쿠데타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왕위 승계를 둘러싼 사우디 왕실 내부의 불안정성이 이번 사태의 한 축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우디의 시아파 지도자 등 47명 처형에 대해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 체제의 공격성을 보여준다”라며 “살만 국왕의 아들로 지난해 4월 부왕세자에 오른 무함마드 빈 살만 국방장관(30)이 거칠고 돌출적이라는 평이 많다”고 보도했다. 왕위 승계 서열 2위인 그가 재정난과 왕실 후계 문제, 예멘 내전 개입 논란 등으로 불거진 내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수니-시아파 갈등을 키운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의 득세를 막기 위한 예멘 내전 개입, 이란 핵 협상 진전에 대한 불만으로 미국과 걸프협력회의 6개국 정상회의 불참 등을 주도한 인물로 무함마드 왕자를 꼽는다. 독일 연방정보국(BND)은 30세에 불과한 그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위험이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살만 국왕의 치매설로 이 같은 분석은 더 확산되는 분위기다.
무함마드 왕자가 경제개발위원회를 이끄는 사우디 경제 실세라는 점도 그의 향후 행보에 불안감을 더하는 요소다. 저유가의 여파로 지난해 재정적자는 3,670억리얄(약 114조3,860억 원)에 달했고, 이에 따라 사우디 왕실은 유가보조금 등 각종 지원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한 수니파 지지층의 이탈 방지책으로 시아파와의 충돌을 떠올렸을 것이라 충분히 상정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불안 요인들을 특히 증폭시키는 것은 왕위 승계를 둘러싼 사우디 왕실 내부의 갈등이다. 살만 국왕이 즉위 3개월 만에 이복동생을 왕세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뒤 친조카와 친아들을 각각 왕세자, 부왕세자에 앉힌 데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은 것이다. 가디언 등은 지난해 9월 몇몇 사우디 왕자들이 공개적으로 ‘궁정 쿠데타’의 필요성과 왕실 내 광범위한 찬성 기류를 주장하는 서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와 관련, BND는 무함마드 왕자가 왕위 계승을 노리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면서 종종 자제력을 잃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양정대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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