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어째서 한창 일할 사람을 그렇게 일찍 데려가셨는지….”(박래경 한국큐레이터협회 명예회장) “한국인으로서 국제적인 독립기획자의 길을 개척한 분 중 한 분입니다. 제가 지금 국제적인 기획자를 꿈꿀 수 있는 것도 선생님 덕분입니다.”(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장)
고인이 돌아간 지 5년이 가까워 오지만, 한국의 유명한 미술작가와 평론가들은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독일 칼스루에(Karlsruhe) 미디어아트센터(ZKM)에서 독특한 기획으로 아시아 현대미술을 소개했고, 아시아인 최초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초빙기획자를 지낸 이원일(1960~2011)의 빈자리가 그만큼 크다.
5주기 기일인 11일보다 3주 앞서 지난해 12월 23일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5주기 추모회는 김성호 미술평론가 겸 독립기획자의 ‘큐레이터 이원일 평전’ 출판기념회를 겸했다. 김 평론가는 “이원일은 한국이 낳은 최초의 글로벌 기획자”라며 “살아서 계속 활동하셨다면 세계에 한국 미술을 소개할 힘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원일은 짧은 작가 활동을 거쳐 성곡미술관ㆍ광주비엔날레ㆍ미디어시티서울 등의 기획자로 경험을 쌓았다. 이후에는 독립기획자로서 ‘예술전투기 조종사’를 자처하며 아시아와 유럽을 종횡무진했다. 그는 한ㆍ중ㆍ일과 동남아시아의 현대미술작가들을 발굴해 하나의 흐름으로 엮기 위해 노력했고 2007년 ZKM에서 그가 기획한 ‘미술의 터모클라인: 아시아의 새 물결’전이 유럽에서 각광을 받았다.
책에는 이원일의 기획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논문도 포함됐다. 이원일은 서구의 근대와 동양의 전통이 혼재된 아시아의 미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자 했다. 김 평론가는 “이원일의 생전 기획은 아시아 현대미술을 유럽에 소개하는 데 그쳤지만 그가 상상한 기획을 더 펼쳐나갔다면 서구와 비서구의 이분법을 벗어나는 전시를 내놓았을 것”이라 평가했다.
이원일 평전은 한국 미술계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기획자론(論)이자 평전이다. 서구에서는 하랄트 제만을 비롯해 유명 기획자들의 기획이론을 다룬 문헌이 많이 나와 있다. 김 평론가는 “한국의 미술기획 역사가 짧기 때문”이라며 “고인을 비롯한 한국 기획자들의 전시와 세계화를 향한 노력이 학술적으로 재조명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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