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공연 안에 감정적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연출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성공한 게 아닙니다.”
헝가리 출신의 연극 연출가 겸 배우인 로버트 알폴디(48)는 자신만의 연극관을 이렇게 밝혔다. 2008년 헝가리 국립극장에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부임해 파격적인 작품으로 호평받은 그는 올해 셰익스피어 400주기를 맞아 국립극단 기획한 연극 ‘겨울이야기’(10~2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의 각색과 연출을 맡아 국내 배우, 제작진들과 손발을 맞춘다.
5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3시간이 훌쩍 넘는 원작의 주요 대사와 장면은 살리되 “동시대 관객과 호흡할 수 있도록” 130분으로 압축했다고 설명했다. 셰익스피어 최후의 로맨스극인 이 작품은 1588년 영국의 작가 로버트 그린의 전기소설 ‘판도스토 시간의 승리’를 셰익스피어가 희곡으로 각색한 것이다. 그린의 소설은 긴 시간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던 주인공 판도스토가 자신의 딸과 사랑에 빠지고, 죄책감으로 죽음을 맞는 비극인 반면 시칠리아 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화해와 용서를 통해 이야기를 행복하게 마무리한다.
알폴디는 “가족, 사회에서 일어나는 재앙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출발점에는 항상 인간적인 오해나 때로 말도 안 되는 이기적인 착오, 갈등이 있다”며 “하지만 사랑, 우정 같은 기본적인 감정이 이런 재앙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은 보여준다. 인간은 무한의 존재라는 것, 어둠과 위대함을 동시에 지닌 존재라는 이야기로 풀 것”이라고 말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연출처럼 무대(박동우)도 파격적이다. 작품 속 시칠리아는 상류층이 머무는 공간으로 해석해 거울처럼 빛이 반사되는 벽을 세우고, 2막 보헤미아는 하층민이 거주하는 어두운 지하 공간으로 설정했다. 극 후반 16년 만에 헤르미오네가 기적적으로 소생하는 순간은 물이 가득 찬 2m 높이의 수조가 깨지면서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셰익스피어를 문학으로 평가한다면 한쪽 면만 본 거예요.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극인이었습니다. 완벽하게 재미있고, 대중문화와 예술을 완벽하게 구현했죠. 정형화된 역사물이 아니라 동시대와 숨쉬는 작품을 선보일 겁니다.” 1644-2003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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