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으로‘스페인 바르셀로나’라고 썼는데 왠지 어색하다. 노란색 바탕에 4개의 붉은 줄, 파란 삼각형에 하얀 별, 바르셀로나 시내 곳곳에 내걸린 카탈루냐 깃발을 보고 나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2014년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에선 81%가 찬성표를 던졌다. 공식 표지판도 카탈루냐어-스페인어-영어 순이고, 국가 인터넷 도메인도 스페인(.es)이 아닌 카탈루냐(.cat)다. 이 정도면‘카탈루냐 바르셀로나’라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 자부심의 중심에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가 있다. 7개의 작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린 이 위대한 건축가가 아니라면, 바르셀로나가 이렇게 익숙한 이름이 됐을 리 없다. 바르셀로나 여행은 기본적으로 가우디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바르셀로나 곳곳에 흩어진 가우디의 건축물을 개인적으로 찾아간다 해도 미술과 건축, 가우디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면 감동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현지가이드가 운영하는 하루짜리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가우디가 설계한 3개의 개인주택과 구엘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둘러보는 코스다.
출발은 가우디의 처녀작 카사비센스(Casa Vicens). 카사는 스페인어로 집 혹은 주택이라는 뜻이니 카사비센스는 비센스가 의뢰한 집이라는 의미다. 지하철 폰타나역에서 가깝다. 흔히 알고 있는 가우디 작품의 특징-이를 테면 부드러운 곡선과 특이한 장식-이 없어 다소 의아하다. 녹색과 하얀 타일장식 외관이 언뜻 아랍 건축물을 보는 듯하다. 왕관처럼 보이는 지붕이 가장 눈에 띄지만, 주변환경과 조화를 중시한 가우디의 특징도 녹아 있다. 노란 꽃 장식 타일과 종려나무 잎 모양의 철제담장은 그곳에 자생하던 꽃과 나무를 형상화한 것이란다. 지금은 은행소유로 내부는 들어갈 수 없다.
다음은 카사바트요(Casa Batllo), 시내 중심부 그라시아 거리에 있다. 한눈에 봐도 ‘튀는’ 외관이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녹색과 청색 모자이크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1906년 개축한 건물인데 스테인드글라스는 크고 작은 컴팩트디스크로 장식한 듯 파격적이다. 해골과 뼈를 연상시키는 발코니와 창문 틀, 머리와 꼬리가 없는 용 형상의 지붕은 가우디의 개성이 한껏 드러난다. 그라시아 거리는 당시 부호들이 경쟁적으로 최고 건축물을 건설해 부를 과시하던 곳이다. 카사바트요와 잇닿은 건물들도 호화롭기 그지없지만 가우디의 작품에 비하면 평범하다. 입장료는 22.5유로로 비싼 편이지만 가우디가 설계한 실내장식과 가구까지 볼 수 있어 성수기에는 미리 예매해야 할 정도로 인기다.
카사바트요에서 약 500m 거리의 카사밀라(Casa Mila)는 물결치는 듯한 외관 곡선 덕분에 채석장(La Pedrera)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카탈루냐인들이 신성시하는 몬세라트 산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옥상의 굴뚝장식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다음으로 가우디의 색깔이 잘 드러난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미역줄기를 연상시키는 괴기스런 발코니 등 특이한 디자인으로 공사과정에서는 집 주인과 불화를 겪었고, 나중에는 공사대금을 받기 위해 소송까지 해 가우디에게 꽤나 맘 고생을 안긴 건물이기도 하다. 주간 입장권은 20.5유로, 아름다운 조명에 동화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야간 관람권은 37.5유로다.
규모만으로 치면 여기까지는 맛보기에 불과하다. 카르멜 언덕에 자리잡은 구엘공원은 가우디의 자연친화적인 건축 스타일이 돋보이는 명물이다. 곡선의 부드러움을 살리면서도 조각난 타일로 색채의 향연을 펼치는 트렌카디스 기법이 가장 잘 구현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애초에 전원주택단지로 구상됐다. 사업가이자 가우디의 열렬한 후원자인 구엘(1846~1918)은 도심과 떨어져 있어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이곳에 고급주택을 분양할 계획이었다. 여기에 가우디의 영감을 입힌다면 최고의 작품이 탄생할 터였다. 그러나 요즘에야 유행하는 ‘웰빙’ 개념을 1900년에 도입했으니 너무 앞서갔다. 교통도 불편하고 기본 인프라도 없는 민둥산 산꼭대기에 거금을 들여서 저택을 분양 받을 부자는 아무도 없었다. 60채 건설계획은 대 실패로 끝나고, 나중에 시에 매각된 부지는 공원으로 개방되었다. 결과적으로 구엘에게는 불행, 바르셀로나에게는 다행이었다.
전체 공원 중 유료 입장 구간은 일부다. 입장료(7유로)를 내기 전 먼저 봐야 할 것은 공원 윗부분의 육교, 차가 다닐 만큼 넓고 튼튼한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비스듬한 아치 모양의 돌기둥이다. 공사도중 나온 석재를 하나하나 모자이크처럼 쌓고 붙인 돌기둥은 아이스크림 장식처럼 빙빙 돌기도하고 흘러내리기도 한다. 육교 위로 솟은 부분은 새의 둥지 모양으로 장식했다. 경사진 언덕을 산책로로 활용한, 자연친화적이면서도 기교가 넘치는 작품이다.
구엘 공원에는 4곳의 매표소가 있다. 육교 방향에서 들어서면 바로 유명한 물결모양 테라스다. 수 십 명이 앉아 쉴 수 있는 타일 의자는 엉덩이를 끌어당기면 등 받침에 꼭 들어맞아 허리가 펴지는 인체공학적 설계까지 고려했다.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세계 최대 의자인 셈이다. 덕분에 공원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로 여겨지지만, 테라스 아래도 가우디의 완벽주의로 꽉 차 있다. 테라스를 떠받치는 사선의 돌기둥을 일렬로 배치해 산책로를 만들었는데, 역시 돌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꿰어 맞췄다. 우유 빛 초콜릿이 흘러내리는 듯한 과자 집 모양의 정문을 나와서도 자꾸만 되돌아보게 된다.
가우디 투어의 대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성당은 기본적으로 성경의 정신을 건축물로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언뜻 앞과 뒤의 파사드(외벽)가 대칭인 듯 보이지만, 예수의 탄생을 표현한 동편은 1935년 완공돼 가우디의 영향이 그대로 반영됐고, 수난을 표현한 서편은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가 1989년 완공한 작품이다. 탄생의 조각들이 사실적인데 비해 수난은 추상적이고 심플하다. 영광을 표현할 남측 파사드는 2002년에 공사에 들어갔다. 1882년부터 130년 넘게 이어지는 대공사는 2010년에야 전체 공정의 절반을 넘겼고, 가우디 사망 100주년이 되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사자금을 전적으로 기부금과 입장료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성당의 상징인 옥수수 모양 첨탑은 18개 중 현재 8개가 완공된 상태, 예수를 상징하는 가장 높은 첨탑은 170m에 이를 예정이다. 가우디가 사망시까지 겨우 4분의 1도 완성하지 못했는데도 이 성당을 그의 대표작으로 여기는 것은 착공 이듬해부터 43년간 2대 건축가로서 그의 정신이 기본 설계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성당내부는 입장료(15유로, 타워까지는 오디오가이드를 포함해 29유로)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 목이 젖혀질 만큼 긴 수많은 기둥을 따라 시선을 끌어올리면 거대한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천장 장식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스며드는 자연조명도 웅장함과 화려함을 더한다.
타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첨탑 사이 좁은 통로를 이동해 나선형 계단을 돌아 내려온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원형 계단은 (그럴 리 없겠지만) 자칫 가운데 구멍으로 빠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타워관람은 포기해도 크게 아쉽지 않다. 동편 입구 작은 연못이 있는 공원에선 수면에 비친 성당을 함께 볼 수 있다. 밤이면 야간조명으로 더욱 신비한 성당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바르셀로나=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