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에 의해 합의 훼손"
한국노총, 사실상 파기 선언
"19일 기자회견서 투쟁 계획"
양대 지침 철회 가능성 낮아
노동계 동투 본격화 할듯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타협 도출 4개월 만에 합의 파탄을 공식 선언했다. 지난해 9월 15일 대타협 직후부터 불완전한 합의라는 지적이 있었던 만큼 파기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노사정 간 공고한 신뢰가 쌓여있지 않은 상태에서 빚어진 결과다. 전문가들은 “정부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한 통로로만 노사정위를 여긴다면 실패는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11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본부에서 4시간에 걸쳐 제61차 중앙집행위원회(중집)를 열고 격론 끝에 “노사정 대타협 파탄”을 최종 확인했다. 최두환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중집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ㆍ새누리당에 의해 노사정 합의가 심각하게 훼손됐기 때문에 대타협이 파탄났음을 공식 선언한다”며 “노사정 대타협 파기의 책임은 노동개혁을 일방적으로 추진한 정부ㆍ여당에게 있다”고 밝혔다. 중집은 한국노총 임원 11명을 포함해 산별노조 위원장 및 지역본부 의장 등 52명으로 구성된 한국노총의 의사결정기구다.
다만 최두환 부위원장은 “노사정위 탈퇴 여부, 대정부 투쟁 방침 등은 김동만 한국노총위원장에 전권 위임한 뒤 정부가 입장을 선회하지 않을 경우 19일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투쟁 계획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즉 정부가 1주일 내에 노동개혁 5대 법안, 양대 지침 초안을 철회할 경우 대타협을 되돌릴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한국노총의 주장은 노동개혁 5대 법안과 양대 지침에 대해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하자는 것인데, 다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법안과 지침 마련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입장 변화가 없는 한 대정부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에 한국노총까지 가세하면서 노동계의 동투(冬鬪)는 본격화하고 노동개혁은 좌초할 전망이다.
노사정위가 중요한 사회적 갈등 쟁점에 대해 토론과 합의의 장으로서 역할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노사정 간 불신의 골이 이미 너무 깊어진 탓이다. 1999년 민주노총에 이어 한국노총마저 탈퇴한 노사정위는 어느 편에서도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는 식물 위원회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기 위해 졸속 회생시킨 노사정위는 끝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좌초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갈수록 심화하는 사회적 이해갈등을 조율하기 위한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 자문기구라는 형식을 탈피해 국회에 두는 것이 사회적 협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통령 자문기구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노사정위는 정부 정책 집행의 수단으로 이용돼 왔다”며 “여야 동수의 의원, 노동계, 경영계가 동참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를 국회에 마련한다면 보다 균형 잡힌 협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부가 노동문제에 과도한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립적 입장을 견지해야 할 정부가 성과주의에 매몰돼 한쪽 편을 드는 등 노사 자치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과도하게 개입해왔다”며 “노사정 간의 깨진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노동계ㆍ경영계의 양보와 협력 없는 정부 주도 노동개혁은 한계가 있다”며 “노사정위 논의 틀을 유지할 수 있게끔 지금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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