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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현대차 앞에서 부드러워진 검찰

입력
2016.01.1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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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검찰은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피고발 사건에 관해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이 처분은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2010년 및 2015년의 대법원 판결과 정반대되는 결론을 선택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검찰의 일반적인 관행에 어긋나는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 사건처럼 혐의 사실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 있어 범죄 혐의를 쉽게 증명할 수 있는데도 검사 스스로가 기소를 포기하는 경우는 법조 실무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과문한 탓일 수도 있지만, 혐의 입증을 어렵게 하는 대법원 판결이 있음에도 검사가 기소를 강행한 것을 본 적은 있으나 그 반대의 경우는 보지 못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해당 검사는 범죄를 찾아 수사하고 처벌을 구하는 검찰 본연의 직무를 게을리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련 고발이 접수된 후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검찰은 무엇을 한 것일까.

검찰이 2010년 대법원 판결 전까지 현대차가 한 불법파견을 법률의 착오로 인정해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도 너무 이례적이다. 판례에 따르면, 법률의 착오란 “일반적으로 범죄가 되는 경우이지만 자신의 특수한 경우에는 법령에 의하여 허용된 행위로서 죄가 되지 않는다고 그릇 인식하고 그렇게 인식한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어 처벌하지 않는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피의자가 설령 법률의 착오를 들어 변명하더라도, 적극적인 수사 의지가 요구되는 검찰 직무의 속성상 담당 검사가 정당한 이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서 검사는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와 대법원 판결을 애써 무시한 채 피의자들의 변명을 믿고 불기소처분을 한 것이다.

검찰이 법률의 착오를 인정하기 위해 현대차의 사내하청 관계가 적법하다는 일부 하급심 판결과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근거로 든 것 역시 법률 실무가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검찰은 세계 어떤 국가의 검찰보다도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고 그 구성원인 검사들의 자부심도 강한 탓에, 검사가 하급심 판결이나 노동위원회의 결정이 있다는 이유로 기소를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나아가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한 노동위원회의 결정과 하급심의 숱한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파업 참가자들의 유죄를 끈기 있게 주장하던 검찰의 적극적인 모습과 비교할 때, 이번 불기소처분에서 나타난 검찰의 무기력함과 순진함은 생소하기만 할 따름이다.

한 신문 사설에서 언급했듯이 "현대차의 사내하청 문제는 생산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불법파견을 대하는 우리 사회 인식 수준의 가늠자"라는 점에서 이번 불기소처분을 통해 노골적으로 기업 편들기에 나선 검찰의 행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비판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업의 노동 범죄를 사회적 기본권의 침해 행위로 보지 않고 공안(公安)적 관점에서 다루는 현재의 검찰 제도에서는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즉, 그 재발을 막기 위해선 비판과 함께 근로감독 제도의 개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나라 근로감독 제도의 결정적 한계는 근로자의 권리를 침해한 범죄에 대한 수사ㆍ기소 권한이 근로감독 기구와 단절된 채 행사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해결책은 근로감독관을 전문 인력으로 충원하고 고용노동부의 일반 기능과 분리시켜 독립성을 확보한 후 근로감독 결과에 따라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 기구가 수사ㆍ기소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마련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선진국 근로감독 운영실태조사’(2008년)에 따르면, 아일랜드와 프랑스 등의 근로감독 기구가 이미 이런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 밖에도 브라질처럼 사회적 기본권 침해 범죄를 담당하는 노동 검찰을 별도로 설립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2014년 구 새정치민주연합의 일부 의원들이 노동 검찰 제도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으나, 논의가 더 진행되지는 못했다. 지금이 그 논의를 다시 시작할 때인 듯하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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