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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춤추는 성장산업… 결국 ‘빈수레’로

입력
2016.01.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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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15일, 당시 집권 1년차였던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를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다. 전세계적 자원ㆍ환경 위기에 대비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겠다는 취지였다. 이후 ‘녹색성장’은 국가적 구호로 자리잡았고 거의 모든 정부 부처가 관련 정책을 쏟아냈다. 녹색성장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모호한 상태에서 정부 부처들은 기존 사업에 ‘녹색’을 갖다 붙였고 딱히 관련도 없는 사업에 예산이 투입됐다.

눈치 빠른 재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업들은 태양광, 풍력 등 녹색성장 관련 산업에 거액을 투자하며 앞다퉈 뛰어들었다.

금융업계도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성장동력산업으로 녹색금융을 선정하자 금융위원회는 관련 금융상품을 보급했고 녹색 산업에 금융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2009년에만 42개의 녹색금융 상품이 출시됐고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말까지 출시된 녹색성장 관련 펀드는 86개였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정부 조직에서 ‘녹색’이란 단어는 모조리 사라졌다. 녹색금융 역시 대부분 은행이 상품 판매를 중단하고 통합해버려 유명무실한 상태다.

한계에 이른 우리 산업을 구해줄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정부의 신성장동력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동쳤다. 역대 정부는 이전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지워버렸고 독자 브랜드를 내세우는데 급급했다.

정권마다 뒤집히는 성장동력 정책

1990년대 들어 정부는 중화학, 기계, 조선 등 기존 ‘중후장대’한 주력 산업만으로 성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는 정보기술(IT)산업 육성을 주요 정책 목표로 삼았고, 노무현 정부 때부터 여러 산업 분야를 지정해 육성하는 성장동력 산업 정책이 본격화됐다.

노무현 정부는 10개, 이명박 정부는 17개, 박근혜 정부는 19개 산업을 성장동력산업으로 지정했지만 내용은 제각각이다. 세 정부에서 일관되게 지원한 것은 지능형 로봇, 바이오 제약, 미래형 자동차 뿐이다.

노무현 정부는 10개 분야를 선정했지만 실제 지원이 이뤄진 것은 노트북용 2차 전지 개발 등 일부에 국한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투입된 정부 예산도 2조2,788억원으로 국가 전체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와 비교하면 미미하다.

이명박 정부는 신성장동력 산업 투자 예산을 16조3,709억원으로 크게 늘리면서 백화점 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7개 산업에서 200개의 과제를 추진하면서 정책과 예산 규모를 비약적으로 늘렸으나 관리 체계가 부실했다.

노무현 정부 때 별도 사업단을 꾸려 정책을 수행한 것과 달리 이명박 정부는 각 부처별로 독자 정책을 시행했는데 오히려 추진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평가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미래전략실장은 MB정부의 신성장동력 정책에 대해 “성장동력별 특성과 발전단계, 생태계 수준을 고려한 구체적 목표 없이 최종 비전 달성을 위한 선언적 목표만 제시했다”며 “세부 실행계획 조차 없어서 미미한 성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성장동력산업 정책이 거둔 성과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2006~2012년 정부의 성장동력산업 정책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분석한 결과 성장성ㆍ수익성ㆍ안정성ㆍ기술성 등에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 분야는 로봇응용, 바이오제약ㆍ의료기기 뿐이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탄소저감에너지, 고도 물처리 산업, LED 응용, 첨단그린도시, 신소재ㆍ나노융합 등 6개 분야는 오히려 기업경쟁력과 기술경쟁력이 모두 후퇴했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국내 성장동력산업 주요 품목의 세계시장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로봇(제조업용), 바이오 의약품은 ‘하’로 최하점을 받았다.

“정부 주도로 산업 키울 수 있다는 생각 버려야”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부가 성장동력 정책을 펴려면 과거 산업화 시대의 성공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의 산업과 기술 수준을 단기간에 따라잡아야 했던 시기에는 정부가 몇몇 기간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정한 뒤 금융ㆍ연구개발ㆍ인력 분야를 집중 지원해 성장동력으로 키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하태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며 “모든 부문에 개입하는 것 보다 성장동력 산업에 뛰어든 기업들이 실패할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개입해 위험을 떠안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벤처기업은 초기 단계에 지원이 필요한데 투자 위험 때문에 제대로 지원이 이뤄지지않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하 연구위원은 “정부가 초기 단계에 실패 위험이 있는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엔젤투자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직접 지원보다 각종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윤희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융합기획팀장은 “직접적인 정부의 지원 정책은 이미 충분하다”며 “섣불리 개입하는 것보다 각종 규제를 풀어주는 게 기업에 더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사물인터넷이 전 산업에 확산되면서 기존에 없던 신기술이 나오는데 관련 인허가 문제가 대두된다”며 “여러 산업들이 얽혀 있는 만큼 부처간 협의를 통해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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