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반기문 vs 김부겸
‘반기문 대망론’ 예사롭지 않아
호남 기반 야당의 TK 후보도 파괴력
영호남 장벽 깨뜨릴 의미 있는 구도
선거는 정책을 바꾸고 국민 삶의 수준을 변화시킨다. 미국의 정치학자 래리 바르텔의 분석처럼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유권자의 선택이 소중한 이유다. 하지만 안철수 돌풍에도 불구하고 4월 총선은 유권자들의 관심 밖인 듯 하다. 야권 분열로 싱거운 게임이 될 게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여당이 쟁점법안을 강행 처리할 수 있는 180석을 확보하느냐, 개헌선인 200석을 돌파하느냐 정도가 그나마 관심사다.
그래서 유권자들의 눈은 벌써 대선을 향하고 있다. 물론 2년 가까이 시간이 남은 만큼 다양한 변수와 구도가 대권주자의 부침을 가져올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잠룡으로 거론되는 현실 정치인들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을 더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신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역과 이념 성향을 막론하고 반 총장을 차기 대권 후보 1위로 꼽았다. 2위 지지율을 배 이상 앞설 만큼 압도적이었다. 올해 말 총장 임기를 끝내고 국내 무대로 복귀하면 혹독한 검증 절차를 거쳐야겠지만, 강한 중도 성향과 지역 색이 약한 충청 출신이라는 점이 폭넓은 지지를 받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비정치인의 참신한 이미지와 풍부한 관료 경험, 청와대 수석 등을 거치며 익힌 정무감각도 큰 장점이다.
반 총장이 현실정치에 뛰어든다면 여당을 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신년 통화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해 “박대통령께서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극찬한 것은 이미 대권주자로서의 정치적 행보를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앞서 작년 말 유엔총회에선 박 대통령과 일곱 차례나 만나 협력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마땅한 TK 후보가 없는 친박계 입장에서는 반 총장을 ‘영남+충청’의 보수정권을 이어갈 안성맞춤 카드로 여기는 게 당연하다. 영남 기반 정당이 호남 인구를 웃도는 충청권 후보를 밀면 승산이 있다는 정치공학적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김 전 의원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서울대 운동권 출신이다. 한국사회에서 철저히 비주류로 살아왔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이 많고 폐쇄적이었던 반면, 김 전 의원은 개혁 이미지가 강하면서도 합리적이고 유연하다. 무엇보다 당내 보기 드문 TK 출신으로 호남 기반의 민주당에 정착하기 위해 힘든 길을 걸어왔다. 3선의 기득권이 있는 경기 군포를 박차고 지역주의 벽을 깨기 위해 보수의 아성에 도전한 게 대표적이다.
그는 2012년 총선(대구 수성갑)과 지난해 대구시장 선거에 야당 후보로 나와 40%대 지지를 받고 석패했다. ‘대구의 정치1번지’ 수성 갑은 최근 31년 간 야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50%를 웃도는 지지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꾸준한 지역 활동과 신선한 이미지로 정당 아닌 인물선거 구도를 만들어낸 결과다. 만일 그가 여권의 심장부인 대구에서 승리한다면 오로지 지역구도를 깨뜨리겠다는 진정성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신화를 재현할 수 있다.
반기문 대 김부겸 구도가 현실화한다면 TK와 호남 표심은 어디를 향할까. 그간 영호남 유권자들은 공고한 지역대결 구도 속에서 연고지 후보에게 80~90%의 절대적 지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지역경제가 가장 낙후한 곳이 바로 대구와 호남이다. 1인당 지역 내 총생산(GRDP) 지표를 보면 전국 16개 광역시ㆍ도 중 대구가 꼴찌, 광주가 15위다. 연고주의에 매달린 대가로 정치인과 관료들은 기득권을 누렸으나 유권자들은 들러리 신세였을 뿐이다.
반 총장이 여권의 대선주자로 나선다면 충청권 최초의 직선 대통령 후보가 된다. 그 자체로 영호남 갈등 구도를 완화하는 촉매가 될 것이다. 김 전 의원 또한 호남 기반 야당의 TK 출신 후보로 영호남 대결구도를 허무는 정치변혁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에서 벗어나 국민통합을 앞당기는 점에서도 반기문 대 김부겸 구도는 의미가 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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