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21곳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은 산은 단연 북한산이다. 북한산은 연 700만여 명이 찾아 매년 국립공원 탐방객 순위에서 맨 꼭대기를 차지한다. 한국 사람들이 워낙 산을 좋아하는데다가,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궁금한 것은 그 다음이다.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지역의 명산을 떠올리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 하지만 정답은 의외로 광주 무등산이다. 2014년 무등산국립공원을 찾은 사람은 381만8,275명으로 북한산국립공원(727만2,268명), 한려해상국립공원(671만2,828명)에 이어 2년 연속 3위에 올랐다. 2013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이후 만 3년 동안 1,100만여 명의 탐방객이 다녀갔을 정도로 손님이 북적대는 곳이다. 21번째로 국립공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막내’지만 인기만큼은 내로라 하는 전국 명산들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다.
무등산의 인기 비결은 이 산이 가진 ‘이중성’이다. 동네 뒷산처럼 푸근하면서도 북한산보다 높은 해발고도 1,187m의 위용을 자랑한다. 광주 도심에서도 차로 20~30분이면 도착하니 동네 뒷산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날씨만 좋으면 광주 시내 어디에서나 보여 친숙한 존재다. 하지만 민간인이 오를 수 있는 최정상 입석대ㆍ서석대(1,017m)까지는 3시간이 넘게 걸리는 큰 산이다. 얕잡아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16일 찾은 무등산은 역시 ‘전국구 스타’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탐방로 초입부터 등산객들로 북새통이다. 주말 동안 추위가 물러간 덕분인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수십 대의 산악회 버스가 줄지어 서있다. 중무장을 하고 먼 길을 달려온 이방인들이 있는가 하면 전라도 사투리로 재잘재잘 떠드는 동네 어린이들도 여럿이다. 출신이 어디든, 저마다의 무등산을 오를 채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증심사 입구 주변에는 오색의 만국기를 내건 상점들도 빼곡하다. 2~3층짜리 아웃도어 매장은 물론 시내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자리잡고 있어, 도심 외곽의 아울렛 매장을 방불케 할 정도다. 신축 건물들 사이로 수십 년간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붙잡아 온 식당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탄불을 피워 구운 고추장 삼겹살과 닭발, 보리밥, 촌닭볶음 등이 주 메뉴다. 넉넉한 남도 인심을 자랑이라도 하듯, 김밥 한 줄을 사도 잘 익은 배추 김치 한 움큼을 얹어준다.
무등산의 독특한 산세와 지질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다. 입석대와 서석대, 규봉으로 불리는 주상절리대가 7,000만년 전부터 무등산을 지키고 있다. 오각형이나 육각형의 돌기둥들이 모여 서있는 입석대와 병풍처럼 펼쳐진 서석대는 천연기념물이다. 입석대와 서석대가 무등산의 주연 배우라면 조연 배우들도 있다. 풍화작용으로 깎이고 넘어진 돌들이 흩어져 있는 너덜겅이다. 산중턱부터 계곡처럼 흘러내리는 너덜겅을 발견할 수 있다.
증심사-당산나무-중머리재-장불재-서석대(약 7km) 코스가 가장 대중적인 코스인데, 왕복 5시간30분 정도 소요되는 장거리 코스이긴 하나 중머리재와 장불재에 평평한 산마루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보통 이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는데, 시골 장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왁자지껄하다. 자리를 깔고 펼쳐 놓은 메뉴를 보면 홍탁 삼합, 머리 고기 등 범상치 않은 음식들이 등장한다. 입은 음식으로 즐겁고, 눈은 은은하게 펼쳐진 백마능선의 전경으로 즐겁다.
무등산은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50년 동안 군사지역으로 묶여있던 정상 천왕봉도 곧 등산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1966년부터 천왕봉 위에 자리잡은 방공포대의 이전이 결정되면서다. 반세기 동안 숨겨왔던 맨머리를 드러내게 되는 셈이다. 아마 더 많은 이들이 무등산을 찾을 것 같다.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 전국구 스타가 몸살을 앓는 것은 아닌지 잠시 걱정을 해 본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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