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스타트업 128곳 참여 사물인터넷ㆍ스마트홈 제품 눈길
中도 슈퍼 전기차 등 다양한 혁신제품으로 주목받아
우버ㆍ리프트, 승차 공유서비스로 교통ㆍ물류에도 변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열린 세계최대의 가전전시회인 CES를 찾아갔다. CES는 올해도 각종 기록을 새로 썼다. 전세계에서 3,800개의 기업이 행사에 참가했고 17만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기자만 6,000명이 왔다.
언론에는 거대기업들의 TV와 가전제품 위주로 소개됐지만 현장에서는 혁신을 주도한 작고날렵한 중견기업과 신생기업(스타트업들)들이 더 주목을 받았다. 대기업에 몰렸던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아 간 곳은 유레카파크라는 스타트업들을 모은 전시공간이다.
올해도 스타트업들의 약진은 여전했다. 올해 CES는 유레카파크의 공간을 대폭 늘렸다. 이곳에 전세계에서 모인 약 500개 스타트업이 기발하고 발랄한 아이디어로 만든 제품을 선보였다. 여기 모인 개개 기업들의 전시관은 비록 3평 정도로 작았지만 아이디어 수준이나 제품의 완성도는 대기업 못지 않았다. CES에서 만난 이찬진 포티스대표는 “지난해보다 스타트업들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갔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단계의 시제품에서 이제는 좀 더 다듬어지고 실생활에서 쓸만한 제품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프랑스 스타트업의 약진
무엇보다 프랑스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가히 프랑스 스타트업의 CES 침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약 200개의 프랑스 기업들이 올해 CES에 나왔는데 그 중 128개의 프랑스 스타트업이 스타트업들을 모아 놓은 전시장인 유레카파크에 나왔다. 전체 스타트업만 놓고 보면 프랑스 스타트업들이 30% 가량을 차지했다.
프랑스 스타트업들은 프랑스의 상징인 붉은 수탉 그림을 넣은 '라 프렌치 테크’라는 로고를 모든 전시관에 부착해 통일성을 줬다. 작은 기업뿐만 아니라 패럿이나 넷앳모같은 큰 프랑스기업들도 모두 수탉 그림의 로고를 붙여놓아 관람객들에게 "프랑스기업들이 정말 많이 왔다"는 인상을 심어 줬다.
프랑스 기업들은 숫자만 많았던 것이 아니라 질도 높았다. 토스트 냄새, 커피 냄새 등의 향기로 깨워주는 ‘센서웨이크’라는 알람시계를 선보였다. 또 비가 올 것 같으면 “날 가지고 가세요”라고 메시지를 내보내는 스마트우산 등 기발한 사물인터넷(IoT) 제품도 내놓아 주목을 많이 받았다.
눈에 띄는 프랑스 중견기업들도 많았다. 45분간 비행하는 패럿의 글라이더형 드론 디스코나 넷앳모의 딥 러닝 인공지능기술을 이용해 집 앞에 자동차나 사람 동물 등이 나타나면 이를 인식해 알려주는 가정 감시카메라 프리센스는 이번 CES를 대표하는 혁신제품 중 하나로 소개됐다.
지난해에 이어 프랑스 기업들을 격려하고 직접 대외홍보활동을 하기 위해 CES 전시장을 찾은 마크론 프랑스 경제산업부장관은 미국 CNN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는 원래 창조적이며 혁신적인 나라다. 다만 그동안 창조적인 에너지를 비즈니스로 연결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많은 스타트업이 나오게 하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이제 바뀌고 있다. 앙트러프레너(창업가)라는 말은 원래 프랑스어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 이제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고 세계적인 감각을 지닌 (프랑스의) 신세대가 CES에서 이렇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기세도 여전했다. 지난해 중국기업들은 거의 900개사가 CES에 나왔는데 올해도 비슷한 규모로 나왔다. 하이얼, 화웨이같은 중국 대기업부터 DJI처럼 급성장하는 신생기업, 스마트폰 케이스를 만드는 중소기업들까지 자동차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기업들이 등장했다.
이번 CES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수퍼 전기차를 내놓은 패러데이퓨처나 사람이 타는 무인드론을 내놓은 이항도 모두 중국 기업들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미국의 인텔은 자사의 리얼센스기술을 이용해 마치 사람처럼 장애물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이를 피해가며 비행하는 드론을 시연해 보였다. 그런데 이 드론도 중국의 드론스타트업 유닉의 제품이었다.
CES의 풍경을 바꾼 공유경제
CES 행사장 바깥에서는 승차 공유서비스인 우버(Uber)와 리프트(Lyft)의 전쟁이 벌어졌다. 미국 라스베이거스가 위치한 네바다주는 지난해 CES에서 우버 서비스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CES를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택시를 타기 위해 30분이상 줄을 서야 하는 경우가 흔했다. CES 주최사는 라스베이거스의 주요 호텔을 연결하는 무료셔틀버스를 제공했지만 모든 승차 수요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때만 해도 “기존 택시회사들의 텃세가 심한 라스베이거스 만큼은 우버가 절대 들어가지 못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9월부터 바뀌었다. 네바다주가 우버 서비스를 허용한 것이다. 70조원이 넘는 기업가치를 자랑하는 1등 사업자인 우버에 이어 2등업체인 리프트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올해 라스베이거스 시내 곳곳과 CES 전시장 여기저기에 우버와 리프트의 광고 및 안내문이 내걸렸다. 우버는 처음 사용하는 이용자에게 15달러 할인쿠폰을 제공했고 리프트는 첫 이용자에게 한 번에 10달러를 할인받는 방식으로 5번 사용할 수 있는 50달러 할인혜택을 제공했다. 덕분에 양 사의 고객 끌기 경쟁이 치열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올해 CES의 풍경을 바꿔 놓았다. 전시장과 주요 호텔 앞에 우버와 리프트를 기다렸다가 탈 수 있는 장소가 따로 설치됐다. 기존 택시와 충돌을 피할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다.
라스베이거스의 택시는 아주 비싸다. 3km가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를 택시로 달리면 3만원 가량의 요금이 나온다. 기본요금 외에 카드로 결제하면 3달러를 더 내야하고 팁 등 각종 추가요금이 붙기 때문이다.
반면 우버의 요금은 훨씬 쌌다. 현장에서 타 본 우버서비스의 운전기사는 “평상시 우버요금이 기존 택시요금의 절반 이하”라며 “결국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대부분 관광객들이 우버나 리프트를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미국인들은 우버나 리프트 등의 승차공유서비스를 대세라고 말한다. 우버와 리프트를 보면 CES 전시장내 무인자동차, 전기자동차를 굳이 보지 않더라도 교통과 물류서비스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CES에서 목격한 세상의 변화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거대 혁신기업들이 CES에 나오지 않았는데도 변화의 폭이 컸다. 이런 빠른 변화 속에서 우리 기업들의 존재감은 삼성전자, LG전자, 기아자동차를 제외하면 크게 체감하기 어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미래 신성장산업이 될 드론과 스마트홈, 가상현실, IoT 분야에서 한국의 미래를 끌고 갈 신진기업이 많이 보이지 않는 문제는 이번 CES에서도 여전했다. 한국에서 온 중소업체들은 많았지만 전시장에서 현지 언론과 참관객들의 큰 주목을 끈 회사가 많지 않았다. 코트라나 대구시 지원으로 온 수십개 한국중소기업들은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기 어려운 외진 장소에 전시관을 마련해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더욱 빠르게 달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 이번 CES였다. 한마디로 창조경제의 글로벌 경쟁시대인 셈이다. 우리도 한국의 5년, 10년 뒤를 떠받칠 새로운 기술기업의 육성이 시급하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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