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부자들’(감독판 포함)이 1월 18일 현재 누적관객(내부자들 707만779명, 내부자들: 디 오리지날 187만1,874명) 894만2,653명을 기록하면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의 흥행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이경영은 자본ㆍ언론과 결탁해 대권을 차지하려는 부패한 정치인 장필우 역을 연기했다. 분명 이경영만이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은 아니다. 하지만 이경영이 연기했을 때 빛나는 배역일 순 있다. 중후함과 천박함을 절묘하게 결합해야만 살릴 수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이경영이 연기한 별별역할’챕터를 보면 더 자세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최근 몇 년간의 충무로를 얘기하려면 이경영을 빼 놓을 수 없다. 정말 많은 작품에 얼굴을 비쳤다. 세간에는 ‘요즘 한국 영화는 이경영이 출연한 작품과 출연하지 않은 작품으로 나뉜다’는 말이 돌 정도다.
예전에도 다작배우는 많았다. 초창기 한국영화엔 다작배우들이 넘쳐났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명품 조연 겹치기 출연’은 어쩌면 여전히 영세한 충무로의 맨 얼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경영을 다작만으로 평가할 순 없다. 대사 한 마디 없는 특별 출연으로도 존재감을 뽐냈고, 엔딩 크레딧 중간에 나오는 쿠키영상에만 출연했을 땐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그의 모습을 찾은 관객도 있었다.
이경영이 앓아 누우면 대재앙이 닥칠 것만 같은 충무로. 물론 그가 없을 때도 충무로는 잘만 돌아갔지만, 왜 그의 귀환에 충무로는 이토록 격하게 화답하는지 그의 출연작을 중심으로 따져보자.
이경영 vs ‘without 이경영’
최근 5년간 개봉(개봉예정 포함)한 한국영화 중 제작비가 10억원 이상 투입된 상업영화는 총 306편. 이 중 이경영은 34편에 출연했다. (같은 기간 이경영이 출연한 영화는 총 39편이다.) 한국영화 10편이 개봉하면 그 중 한 편 꼴(11.1%)로 출연한 셈이다. 지난해와 올해만 따지면 120편(예상) 중 18편에 출연해 15%로 치솟는다. 산술적으로 한 달에 1.5편의 영화에 출연했단 얘기다. 영화관에 가면 거의 1년 내내 이경영이 출연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 ‘이경영 쿼터제’라는 얘기가 아예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2011년 64편 중 5편: 모비딕, 써니, 최종병기 활, 카운트다운, 푸른소금
▲2012년 65편 중 7편: 5백만불의 사나이, 26년, 남영동 1985, 봄,눈, 부러진 화살, 회사원, 후궁 제왕의 첩
▲2013년 57편 중 4편: 더 테러 라이브, 베를린, 신세계,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2014년 60편 중 8편: 관능의 법칙, 군도 민란의 시대, 또 하나의 약속, 백프로, 제보자, 타짜 - 신의 손, 패션왕, 해적 바다로 간 산적
▲2015년 60편 중 10편: 내부자들, 뷰티 인사이드, 서부전선, 소수의견, 암살, 은밀한 유혹, 조선마술사, 치외법권, 허삼관, 협녀 칼의 기억
이경영이 연기한 ‘별별역할’
하도 많은 영화에 등장하고, 출연 비중도 제각각이다 보니 ‘이 영화에도 이경영이 나왔었나?’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최근 5년간 39작품에서 이경영이 연기했던 역할들을 속속들이 살펴봤다.
액션과 멜로, 현대극과 사극 등 장르와 시대배경을 뛰어넘어 그는 정말 다양한 역을 소화했다. 권력에 기생했고 권력에 저항했다. 냉혈한과 로맨티스트를 넘나들었고,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와 과격한 분노를 내뿜는 역할을 두루 연기했다.
‘충무로 노예’ 이경영 vs ‘오천만 배우’ 오달수
이경영의 다작 행보(최근 5년간 출연작 39편)에 대적할 만한 배우는 배성우(33편), 오달수(23편), 송영창(20편), 조진웅(19편, 이상 2016년 개봉예정 영화 제외) 등이 있다. 면면을 보면, 코믹하고 능청스러운 감초 역할이나 건달 역할 등 특정 캐릭터에 충실한 배우들이다. (물론 최근엔 연기 보폭을 넓혀가고 있는 배우들이기도 하지만…) 가장 자주 언급되는 감초형 다작배우인 오달수와 이경영을 비교해보면 이경영이 얼마나 입체적이고 폭넓은 배역을 소화해 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비슷한 장르나 함께 출연한 영화 등을 비교했다.
이경영을 노예로 만든 충무로의 변명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흥행에 영향을 줄 배우는 아닌데 연기가 매우 안정적이다. 제작자나 감독이 원하는 연기를 딱 해준다. 영화의 새로운 면모를 주연급에게 요구했을 때 이를 받쳐줄 만한 연기자가 필요한데 이경영이 그런 역할을 한다. 착해서 다작을 하기도 한다. 오래 전 지인과 한 약속을 깨지 못하고 출연 제의도 쉽게 거부하지 못한다. 본인은 다작을 싫어하나 힘들 때 도와준 사람을 저버리지 않다 보니 다작을 한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
“여러 역할을 해도 식상하지 않은 배우다. 현대적인 연기를 하기에 젊은 세대가 받아 들기도 수월하다. 감성적이면서도 과하지 않은 연기를 하는 점도 장점이다. 출연료 등 출연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 쉽게 캐스팅할 수 있으니 제작자들이 자주 찾는다.”
-제작자 A씨
“연기를 잘하니 제작자들이 그를 종종 캐스팅할 수 밖에 없다. 예전엔 주연을 많이 해 인지도가 높은 점도 장점이다. (감독, 출연진 등) 영화제작의 구도를 크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조연급 배우다. 개런티가 높지 않은데 출연 효과가 크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좋은 배우다. 오달수는 연기 스펙트럼이 넓지 않은 반면 이경영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한다. 하지만 너무 자주 등장하니 그도, 한국영화도, 식상해지는 면이 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정진호 인턴기자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
한설이 (서울여대 언론홍보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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