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의 전화 한 통화에 그리스 최대 항구가 결국 중국 손에 넘어갔다.
21일 영국 BBC에 따르면 그리스 국가사유화위원회(HRADF)는 전날 중국 국영 회사인 중국원양운수(COSCO)그룹의 피레우스항 인수 계획을 비준했다. AFP 통신도 COSCO가 피레우스항 관리국(OLP)의 지분 67%를 총 3억6,850만유로(약 4,9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수정 제안, HRADF의 승인을 받았다고 전했다. 당초 COSCO는 2억9,300만유로(약 3,900억원)의 인수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은 애초 지지부진했지만 양국 정상의 전화 통화를 계기로 급물살을 탔다. 리 총리가 19일 오후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의 통화에서 “양국의 피레우스항 사업 협력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며 “중국 기업들의 그리스 투자를 더욱 보장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고 인민일보가 전했다. 치프라스 총리도 “그리스는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한다”며 “피레우스항 사업을 진전시키자”고 화답했다. 앞서 급진좌파연합의 치프라스 총리는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피레우스항 매각 작업을 전면 중단시켰고 중국의 피레우스항 인수도 무산되는 것 아니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치프라스 정권은 지난해 유로존으로부터 860억 유로(약 113조원)의 3차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국가 기간 산업의 민영화를 약속했고 이에 따라 피레우스항 매각 작업도 다시 재개됐다.
중국이 총리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유는 피레우스항이 아시아와 동유럽, 북아프리카로 가는 관문이자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주창한 국가적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해상 실크로드, One Belt One Road) 구상을 실현하는데 핵심적인 요충지로 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군사적 가치도 높다. 실제로 피레우스항은 2014년 1,680만 명의 여객과 360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의 화물을 처리한 그리스 최대 항구이자 유럽의 물류 기지이다. 중국을 떠난 컨테이너선은 인도양을 건너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뒤 지중해로 진입, 이곳에 닻을 내린다. 유럽에 해상 거점을 갖지 못한 중국이 오래 전부터 피레우스를 노려온 이유다.
유럽에 교두보를 세운 중국은 중동에도 일대일로의 거점을 마련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일 사우디아라비아, 20일 이집트에 이어 22~23일 이란을 찾는 시 주석의 중동 3개국 순방은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다. 시 주석이 2013년 취임 이후 중동 지역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쉐칭궈(薛慶國) 베이징외국어대 아랍어학과 교수는 “이들 세 나라는 중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고, 중국과 관계도 긴밀하다”며 “시 주석이 올해 첫 순방지로 중동을 선택한 것은 중국이 이 지역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인민망에 말했다.
국제 유가 하락에 고전하고 있는 3국은 중국에 더 많은 원유를 팔고 중국의 투자도 더 많이 받기 위해 치열한 구애 경쟁을 벌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시 주석의 전용기를 호위하는 데 전투기 4대를 동원하자 이집트는 그 2배인 8대를 띄워, 눈길을 끌었다. 시 주석이 이란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풀린 뒤 이란을 찾는 첫 외국 정상이란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란산 원유와 가스가 해상뿐 아니라 파키스탄을 경유할 경우엔 육상을 통해서도 중국까지 운송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시 주석의 중동 3개국 순방은 원유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이들 산유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일대일로 전략을 통해 중동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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