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기반 DLS 손실도 눈덩이
지난해 4월 만기된 적금 3,000만원을 고스란히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ㆍ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한 박모(42)씨는 최근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H지수가 계속 떨어지면서 원금손실구간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H지수가 1만4,000일 때 원금손실구간(녹인배리어ㆍknock-in barrier)이 55%(H지수 7,700)인 상품에 가입했는데, 21일 H지수는 전날보다 2.24% 급락한 7,835.64로 마감했다. 박씨는 “‘은행이자보다 수익이 높다’, ‘손해 볼 일이 거의 없다’ 등의 은행 직원 권유만 덜컥 믿고 가입했던 게 화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8개월 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DLS)에 1,000만원을 투자한 유모(39)씨 역시 계속 되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한 숨이 늘었다. 1배럴당 가격이 23.76달러까지 떨어지면 원금손실구간에 진입하기 때문이다. 20일(현지시간) WTI 종가는 배럴당 26.55달러. 배럴당 WTI 가격이 20~25달러 사이일 때 원금손실구간에 진입하는 또 다른 DLS를 2개 더 갖고 있는 그는 “국제유가가 계속 떨어질 거라는 전망이 나와 중도상환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저금리 시대 ‘중위험ㆍ중수익’의 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았던 파생상품이 무더기로 손실 구간에 진입하면서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손실 규모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면서 이러다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파생상품은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택한 ELS와 국제유가를 기초로 한 DLS다. 상품계약 당시 기초자산 지수의 40~60% 선으로 원금손실구간이 설정되는데, 가입기간(보통 3년) 중 한 번이라도 이 구간 아래로 지수가 내려가고, 기간별 조기상환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제시된 수익률을 받지 못한다. 다만 손실구간에 진입한 ELS라도 조기상환시점이나 만기시점의 상환 조건(계약 당시 지수의 70% 내외)을 충족하면 가능하지만 가입기간 내내 가슴을 졸여야 한다. 홍콩H지수가 1만4,000일 때 ELS에 투자한 사람이 원리금을 받기 위해선 지수가 1만 안팎으로 올라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난해 5월 1만5,000선에 육박했던 H지수는 불과 8개월 만에 7,000대로 주저앉았고, 지난해 6월 배럴당 60달러가 넘었던 WTI 가격 역시 올 들어 반토막도 더 났다. 이들 상품에 투자했다가 원금손실구간에 들어선 금액만 벌써 2조4,000억원대(H지수 연계 ELS 1조5,453억원ㆍ원유 DLS 9,004억원)에 달한다.
H지수와 국제유가 하락세가 지속되면 손실 우려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원금비보장형 ELS 상품을 기준으로 H지수가 7,000으로 하락하면 원금손실구간에 들어선 누적 규모가 4조원, 6,000일 경우 6조3,000억원으로 급증한다. 금융당국이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일까지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발행 규모는 37조원으로, ELS 전체 발행잔액의 55% 수준이다.
불완전 판매 논란도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발행된 ELS 가운데 97%가 2018년 이후 만기이기 때문에 H지수 등이 회복되면 투자자 손실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해당 상품들을 판매할 때 투자자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을 제대로 알렸는지 등을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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