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세입자 하나둘 떠나는데 건물주는 높은 월세 고수
종로 1년 만에 월세 27% 폭등… 상권 죽으면 건물주에 부메랑
지난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 중 ‘커피프린스 길’로 유명한 와우산로 일대는 불과 100m 거리를 걷는 동안 1층에 텅 빈 점포만 5군데가 넘었다. 영업 중인 점포에도 손님은 많지 않았고, 거리는 조용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중 1곳은 벌써 9개월여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은 채 방치돼 있고 영업하는 곳들 중에서도 임대로 내놓고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만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특히 “올해는 더 불황이라고 하는데 건물주들은 전용면적 26㎡ 규모의 작은 점포를 보증금 1억원에 월세 평균이 400만원, 많게는 800만원 이상 받으려고 해 세입자들과 인식의 격차가 크다”고 말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역습이 시작됐다. 명소로 이름나면 예외 없이 임대료가 폭등해 기존 상인들이 쫓겨나고 그 자리를 곧장 대형 프랜차이즈 등이 점령하는 현상이 반복됐는데 최근 들어선 이곳에 입주하겠다는 세입자들의 발길이 하나 둘 끊기고 있는 것이다. 이 탓에 유명 상권 곳곳에 빈 상점이 늘고 있지만 건물주들의 콧대가 꺾이기는커녕 임대료는 요지부동 상태다. 전문가들은 세입자들이 임대료를 감내하는데 한계에 이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대로 공실률이 높아질 경우 상권이 죽어 건물주들도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2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지역 유명 상권들의 공실률이 치솟고 있다. 작년 3분기 기준 홍대ㆍ합정의 상가 공실률은 8.2%로 2년 전보다 4.9%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북촌한옥마을과 삼청동 길로 유명한 종로(8.9→9.8%)를 비롯해 압구정(5.1→9.1%), 신촌(5.5→8.9%), 이태원(3.3→10.0%) 등 다른 명소도 빈 점포가 크게 늘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관광객들이 줄고, 내수 경기도 악화하면서 세입자들이 임대료를 감당하는 데 한계에 달해 더는 명소라고 해도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하지만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내리기 보다는 비싼 월세를 부담할 세입자가 나타날 때까지 공실로 두고 있는 것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빈 점포가 늘면 어떻게든 세입자를 들이기 위해 임대료를 내리는 게 시장의 순리인데 이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른 상권도 사정은 비슷하다. 공방과 갤러리 등으로 채워졌던 ‘공방천국’에서 대기업 업체들의 집합소로 변해버린 종로구 삼청동 거리가 대표적이다. 삼청파출소에서 한국금융연수원까지 1㎞에 이르는 메인 거리에 텅 빈 상가가 5곳이나 됐는데, 이중에는 주변 상점보다 몇 배의 월세를 더 내던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도 포함돼 있었다. 5년간 이 길에서 전용면적 198㎡, 2층 규모의 유명 체인점 카페를 운영하다 최근 점포정리를 하고 있는 김모(35)씨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줄면서 소득도 줄었는데 월세는 2년 전보다 3배 넘게 올라 현재는 한 달에 1,500만원을 낸다”며 “고육지책으로 2014년 전부터 1층 일부 공간에 여성 신발과 장난감을 함께 팔았지만 역부족이라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실제 임대료 상승세는 가파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종로는 3.3㎡당 월 임대료가 2014년말 18만3,150원에서 지난해말 23만2,650원으로 27.0%, 용산구 이태원은 11만7,150원에서 14만3,880원으로 22.8% 급등했다. 강남구 신사동과 마포구 합정동도 월 임대료가 1년 만에 각각 12.4%, 11.1% 올랐다. 공실률이 늘면 임대료가 싸진다는 통념을 깨고 되레 유명세에 기대 임대료만 ‘나 홀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각할 때는 상권이 개성을 잃는 것이 문제였는데, 이제는 상권 자체가 죽을 수도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지역이 유명세를 타면 공실이 생겨도 건물주들이 조금만 기다리면 높은 월세를 감당할 세입자가 나타날 거라는 기대감에 임대료를 쉽게 내리지 않고, 공실 기간 동안 발생한 손해까지 차후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세입자들이 상권을 외면하고 지역이 공동화돼 건물주들도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
오주환 인턴기자(서강대 신문방송학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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