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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 요란한 행복정책, 짜깁기-실적용 사업 우수수

입력
2016.01.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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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공원 짓고 도로 개설하고

개발식 사고 못 벗어난 사업 난무

중심시, 주변 묶어 삶의 질 개선

지역행복 생활권 선도 사업도

실적쌓기에 치중 전시행정 전락

1970년대부터 영국의 도시와 마을들은 주기적으로 ‘마을 감정조사(Village Appraisal)’라는 제도를 시행해 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상태를 진단하고 요구를 명확히 파악한 뒤 마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을 제안하는 것이다. 질문 항목에서부터 분석 결과에 따른 실천 계획까지 지역 주민들이 직접 만든다.

영국 서남부 산업도시 브리스톨이 친환경 도시로 변신한 것도 마을 감정조사가 출발이었다. 항구가 폐쇄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주민들은 죽은 도시를 살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도심 곳곳에 공동정원을 살리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지역 재생 사업을 꾸준히 펼쳤다. 브리스톨 시민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마을과 도시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면서 지역 공동체는 물론 자신의 행복도 역시 높여가고 있다. 그 결과 브리스톨은 지난해 유럽 녹색도시에 뽑히는 등 생태도시로서의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세계의 도시들은 행복을 정책에 반영시키려는 노력을 경쟁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중앙정부의 획일적 정책만으로는 개별 지역의 특수성을 살리지 못해 주민 행복도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도 지역행복생활권이라는 정책 비전을 제시하며 행복 가치를 앞세우긴 했다. 그러나 구호만 앞섰을 뿐 구체적 액션 플랜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기존 정책에 너도나도 행복이란 단어만 갖다 붙여 도리어 행복과 정책의 괴리감만 커지고 있다.

행복, 정책 타기팅 아닌 마케팅으로 전락

행복과 정책이 동떨어져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역행복생활권 선도사업을 꼽을 수 있다. 2013년 7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지역발전위원회가 핵심지역정책으로 발표한 지역행복생활권은 지역개발이 아닌 삶의 질 개선에 필요한 정책 추진을 목표로 한다. 개별 행정구역에 한정 짓지 않고 인접 시군구까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어 예산을 투자하는 게 핵심이다. 중심시와 주변시를 묶어 의료 및 교육 등 복지서비스 기능을 상호 보완하는 일본의 정주자립권과 영국의 생활권 개념을 벤치마킹했다. 지역발전위원회 관계자는 “각 지자체로부터 주민 수요에 맞춘 사업계획서를 공모 받아 심사기준에 부합할 경우 예산을 내려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매년 투입되는 돈만 350억원이다.

하지만 2014, 2015년도에 선정된 지역생활권 선도사업 계획서를 살펴보면 지역 특산품 활성화를 위한 테마공원 조성이나 도로 개설 및 복구 등 시설 인프라 개발에 집중된 경우가 태반이다. 실적 쌓기에 치중한 전시 행정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지역행복생활권 사업은 국토부 안행부 농림부가 각각 운영하고 있어 도심재생 사업 등 겹치는 게 많아 중복 투자의 비효율성은 여전하다.

박승규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역경제분석센터 소장은 “일본의 정주권 정책은 주민복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우리는 여전히 건물을 세우고 도로를 닦는 개발식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주민행복과 직결된다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사업들이 남발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명박정부 당시 추진됐던 ‘5+2 광역경제권’에 행복이란 이름만 붙였을 뿐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다.

콘트롤 타워, 롤 모델도 부재 일회성 행사로

중앙정부는 행복의 정책화 시늉이라도 하지만 지방정부 대부분은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단적으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세계 지방정부 협의회인 이클레이(ICLEI)에 가입된 지자체는 우리나라 전체 자치단체 242곳 중 55곳(광역12곳, 기초43곳)에 불과하다. 이들은 행복하고 건강하고 포용적인 지역사회 등 10대 의제를 설정한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관련한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하거나 외국 도시 우수사례를 협력하는 등 정책 공유를 실천하고 있다. 박연희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소장은 “과거보다 지역 공동체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지자체들이 늘었지만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라고 말했다.

행복이란 가치를 정책과 접목시키려는 지자체들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북 정읍시 등 각 지자체들이 행복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수사에 그친다. 정읍시의 경우 2030년까지 ‘누구나 행복한, 성장하는 도시 정읍’을 목표로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추진 전략으로 첨단산업기반 확보, 전통사업의 고도화 등을 꼽고 있어 성장 중심의 사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자체들이 개별적으로 행복지표를 개발하더라도 전문가, 공무원 주도로 기준이 마련되다 보니 주민 현실과 동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주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니 지표를 만드는 것도 일회성 행사로 끝나기 일쑤다. 우리나라 지자체 중 처음으로 지역 행복지표를 개발한 충남연구원의 고승희 행정복지연구부장은 “개별 지역 주민들 삶의 어떤 측면이 행복을 느끼게 하는지, 구체적인 인과 요인을 찾아내야 하는데 단순한 결과 지표에 집착하다 보니 결국 다른 지자체와 줄 세우기 비교 자료로만 사용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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