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단계부터 주민 목소리 담고
행복 시책 발굴 ‘행복돌봄과’ 설치
취약계층 복지상담·민원처리
‘행복동’ 사업 벤치마킹 줄이어
중소도시 중 삶의 질 최고
“적적한데 같이 어울려 지내니 심심하지 않아서 좋아. 아파도 옆에서 돌봐줄 친구들이 있어 걱정도 덜고, 쓸쓸하게 죽을 염려도 없어 마음이 편안하네.”
전남 순천시의 독거노인 공동 주거제도인 ‘9988쉼터’에서 생활하는 한 할머니의 말이다. 9988은 ‘99세까지 팔팔하게 사시라’는 뜻이다. 2013년 순천시가 행복 정책의 하나로 어르신끼리 함께 지내며 건강도 지키면서 생활하도록 만든 생활공동체다. 쉼터와 보건소가 핫라인으로 연결돼 건강관리는 물론 고독사(孤獨死)도 예방할 수 있다. 행복감은 물질적 지원뿐만 아니라 정서적 지원도 중요하기 때문에 거주 노인들의 표정은 밝았다. 순천시 서면 지본마을 박복남(89) 할머니는 “쉼터에서 같이 밥도 짓고 음식도 만들고 서로 의지하면서 쉼터 사람들이 한식구가 됐다”며 “하루하루가 즐겁고 입맛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10명 안팎의 독거노인이 생활하는 쉼터는 도농복합지역인 순천시에 모두 42곳이 운영 중이다.
순천시는 행복이 정책 구호에 그치지 않는 흔치 않은 사례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최로 도시 이미지가 상승하자 지방자치단체가 시민, 전문가들과의 논의를 거쳐 주민 행복을 정책 목표로 삼았다. 그렇게 해서 순천시청에는 지자체로는 보기 드문 ‘행복돌봄과’라는 부서가 생겼다. 노인장애인과나 사회복지과는 별도로 있다. 저소득층은 물론 시민 대다수가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시책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9988쉼터 아이디어도 주민 의견을 받아 만들었다.
또 시민건강과 행복과 관련된 단체, 동아리, 시민들이 참여하는 순천시민 행복네트워크가 구성돼 사업 기획 단계부터 주민 목소리가 담긴다. 행복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김석(43) 행복리더 1기 대표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시민이 일상에서 좀 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업을 찾아내고 정책에 반영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시민이 주도하고 함께 실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주민 주도의 보건복지통합서비스 모델인 행복동은 벤치마킹을 위해 전국 지자체의 방문과 문의를 많이 받는 정책이다. 행복동은 동장과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간호사, 사례관리사가 함께 취약 계층을 방문해 복지상담과 건강체크, 생활민원까지 처리하는 서비스 체계다. 현재 7개 동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2018년까지 전 읍면동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일반 시민을 위한 행복 정책으로는 행복리더 육성, 전 시민 사감운동(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마을 만들기, 주민이 함께하는 건강한 아파트 만들기, 명소를 체험하는 순천형 힐링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다. 윤종필(38·순천시 조곡동)씨는 “말로만 행복이라는 줄 알았더니 마을 주치의 제도나 친환경 정원도시를 만들어가는 정책들이 꽤 일상생활에서 만족감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지난해 지역발전위원회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전국 성인 남녀 2만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 230개 시·군·구 삶의 질 만족도 조사에서도 순천시가 10위에 올랐다. 1위부터 9위까지는 수도권과 광역시가 차지해 지방 중소도시로는 순천시가 사실상 선두다. 여기에는 3년 전 치른 정원박람회가 큰 계기가 됐다. 행사 후 생태적 가치 상승뿐 아니라 주거 환경 문화 교육 경제 등 전 분야의 변화로 나타난다. 정주환경이 나아지면서 순천시는 전남 동부권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늘었다. 순천시 관계자는 “최근 시의 사회지표 조사에서 시민 90% 이상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 답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순천=하태민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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