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22일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와 노조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을 허용하는 양대 지침을 전격 발표하면서 거론한 명분은 ‘불확실성 해소’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지침을 공개하며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공언했지만, 여전히 ‘쉬운 해고’와 ‘일방적 임금 삭감’을 현실화할 명분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고의 종류◆
자료 : 고용노동부
해고절차 까다로워도 악용 가능성
정부가 발표한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의 핵심은 객관적 평가를 통해 직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들로 해고 대상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적극성, 리더십, 책임감, 소통, 창의성 같은 추상적인 평가기준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객관적 평가를 담보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쟁점으로 남는다. 또 노사가 함께 평가에 참여토록 했지만 노동계는 국내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한 상황에서 공정한 절차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성혜 동국대 법대 교수는 “지금껏 징계해고는 근로자에게 귀책 사유가 있어야 했고 정리해고의 경우 경영상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이번 지침으로 사용자에게 눈엣가시 같은 근로자를 사용자가 별 이유 없이 해고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저성과자를 징계해고 방식으로 해고하는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 해고를 ‘별탈 없이’ 할 수 있도록 일반해고 지침을 마련했다는 의혹이 노동계 일각에서 제기돼 왔다.
사측의 비용 절감을 위해서도 정부 지침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정리해고에 수반하는 명예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사용자가 실적을 빌미 삼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저성과자로 몰려 퇴출된 근로자가 무능력자란 낙인 탓에 다른 곳에 취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대신증권과 현대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 사측이 대량 해고를 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는 사례가 지금도 속출하고 있는데 이번 지침 탓에 해고 확대는 불 보듯 뻔해졌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 어긋나는 지침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취업규칙 변경기준을 완화한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가 반대할 경우 취업규칙 변경을 제한함으로써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막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법이 아닌 행정지침 개정으로 근로자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임금피크제 도입 가능성을 열어 통상임금 사태 때처럼 각 사업장에서 줄소송이 벌어질 수 있다.
류주형 민주노총 정책부장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완화 지침은 근로기준법 제94조에 명시적으로 위배되는 불법적 지침으로 엄격하게 예외를 적용토록 한 판례 취지와도 어긋난 것”이라며 “그런데도 이미 국립대 병원이나 교육청 같은 사업장에서 이를 근로자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 도입 가능 신호로 읽는 사용자들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혜 교수는 “판례를 근거로 한 지침이라고는 해도 이를 명시할 때의 위험성과 부작용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우리나라가 기껏 쌓아온 근로자 권익 보호의 벽을 일거에 허물어뜨리는 꼴”이라고 이번 정부 조치를 비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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