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 1단지 앞. 퇴근시간이 1시간 이상 남았지만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습니다. 주차장 진입로 양 옆에도 이미 승용차로 즐비했고요. 1986년에 건설되다 보니 지하주차장이 없어 매일같이 이런 주차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물은 30년이 지났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관리가 잘 돼 있었습니다. 균열은 보이지 않고 심지어 페인트칠이 벗겨진 곳도 없었습니다. 세대마다 개별적으로 해놓은 일부 베란다 샤시에 녹 슨 흔적이 있어 오래됐음을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현재 이 아파트를 비롯한 목동 단지는 재건축이 추진 중에 있습니다. 양천구에서 관련 용역에, 주민참여단까지 모집해 구체적인 재건축 계획이 수립되고 있고, 4월 총선에 출마할 후보들조차 재건축 공약을 너도나도 내세울 정도로 이 지역에선 재건축이 핫이슈인 게 분명합니다.
이런 탓에 목동아파트는 부동산 비수기인 이달에도 전세가격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1단지 65㎡ 주택형은 전달보다 2,000만원 이상 오른 4억5,500만원에 최근 거래됐죠.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구청에서 지난해 11월 재정비 용역 발주에 들어간 이후 전세뿐만 아니라 매매도 관심이 높아진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비슷한 시각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아파트. 이 단지 역시 지하주차장이 없어 주차공간 부족으로 시달립니다. 13층 규모의 외벽엔 조그마한 균열이 곳곳에 보여 한 눈에 봐도 오래된 아파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시범아파트는 1971년도에 건설돼 재건축 연한을 이미 넘었습니다. 지난 연말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재구성하고 추진위원장을 새로 뽑았으나 주민들 사이에선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죠. 15년 동안 거주한 김모(69)는 “이사 올 때 내부 공사를 다시 해 새 아파트와 다를 바 없다”며 “기둥식 구조로 튼튼하게 설계한 아파트를 굳이 추가 자금을 들여가면서 재건축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재건축 연한 단축에, 부동산 경기 활황을 타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건축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올해 재건축 대상 물량만 13만5,000가구에 이른 상황입니다. 이미 건설사들은 재건축 수주전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고, 재건축이 본격화된 지역에선 비수기인 한겨울에도 전셋값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매년 재건축 물량은 급증해 2020년이면 현재보다 대상이 3배 이상 늘게 돼 전국이 재건축 폭탄으로 들썩일 전망입니다. 한국의 아파트는 100년을 버틴다는 철근 콘크리트를 기반으로 건설됐는데도 왜 유독 수명이 짧아 이런 난리를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80년대 준공 단지 대부분 100년 주택인데도 허물어
재건축 대상 건축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이 지난해 시행에 들어가면서 목동아파트 등 1986년에 건설된 아파트가 당장 올해부터 재건축 대상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앞으로 3년간 매년 쏟아지는 재건축 대상 물량만 12만~19만 가구에 이릅니다. 6년 후인 2022년 이후에는 이 보다 3배 많은 47만가구 이상 대상에 오릅니다.
◆연도별 재건축 물량(단위 : 만가구)
<자료: 국토교통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의 최소 수명(60~100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연한인데도 이렇게 노후ㆍ불량 주택 대상으로 꼽히고 있는 셈이죠. 한국 아파트는 부실하게 건설돼 30년만 되면 바로 재건축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실제 한국의 아파트 평균 교체 수명은 26.95년(2005년 기준)입니다. 선진국의 아파트 교체 기간인 54~128년과 비교하면 너무 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죠. 1970년 준공된 지 석 달 만에 붕괴된 와우아파트처럼 부실시공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되는 모양새입니다. 이학주 SH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와우아파트 사고에, 1기 신도시 ‘바다모래 파동’이 잇따르다 보니 한국 건축물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이라며 “구조적 안전상 80년대 이후 지어진 대부분 단지는 관리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50년 이상 버틸 수 있게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재건축이 이뤄지는 것은 건물 수명만이 원인은 아니란 설명이죠.
◆주요 국가별 아파트 교체 수명(단위: 년, 괄호 안은 기준 연도)
<자료: 국토교통부>
결국 아파트 재개발은 항시 입주물량을 걱정하는 정부와 건설사, 입주민의 염원이 맞아 떨어져 이뤄진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됩니다. 보다 높은 건물을 지어 많은 사람이 이용하도록 하자는 땅에 대한 경제적 논리가 “사회적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는 의견을 누른 셈이죠. 실제 30년 연한이 지난 아파트에 대한 최종 재건축 여부를 가리는 안전진단 기준은 ▦주차장, 배관, 층간소음, 에너지 효율성 등 주거환경 평가 ▦구조 안전성 결함 ▦건축 마감 및 설비 노후도 ▦비용분석 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바로 무너질 것만 같은 아파트만 재건축 대상이 되는 게 아닌 셈이죠.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구조안전 제고와 함께 주거환경 중심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꼭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건축물만 재건축 요건인 D, E등급을 받는 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준공된 지 30년이 지난 아파트는 안전진단의 40%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환경 평가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기에, 사업성만 확보된다면 재건축이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곳곳에서 재건축 몸살… 고분양 재건축 단지 미분양 속출, 투자심리 위축 우려
이런 틈을 타고 재건축은 우리 사회 곳곳에 파고들어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우선 2009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배를 곯던 건설사들 입장에선 재건축은 놓칠 수 없는 먹잇감일 수밖에 없죠. 그렇기에 대형업체뿐만 아니라 과거 택지개발 위주로 주택사업을 펼치던 중견업체들까지 가세해 과열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공사 선정을 두 달 앞둔 서울 중랑구 ‘중화1구역 재개발사업’을 진행중인 중랑구에선 현재 건설사들의 불법 홍보행위에 대한 신고가 접수돼 조합과 구청에서 조사를 벌일 정도입니다. 서초 무지개아파트도 지난달 시공사를 GS건설로 선정할 때까지 경쟁 건설사 흠집내기에, 건설사들의 조합원 개별 홍보전 등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올 상반기 시공사 선정을 마친 ‘서초 삼호가든3차’ 재건축사업에서는 입찰 참여 건설사들이 조합원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재건축 아파트 단지는 ‘고분양가 경쟁’을 벌이고 있어 거품이 낀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 지난해 10월 반포 래미안 아이파크가 3.3㎡당 4,240만원대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지 석 달 만인 1월 서울 잠원동 반포한양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신반포자이가 3.3㎡당 분양가를 50만원 높여 최고가를 갈아치웠습니다. 개포주공2단지를 재건축해 올해 3월 공급될 ‘래미안 블레스티지’도 예상치(3,600만원)을 훌쩍 넘긴 4,000만원 전후로 검토되고 있으며, 올해 6월 분양할 예정인 ‘디에이치 개포’는 4,000만원 중반에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쓸만한 건물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재건축이 계속 유망하지만은 않다는 게 전문가들 판단입니다. 고분양가로 주목 받은 반포 래미안 아이파크, 센트럴 푸르지오 써밋 등 강남권 재건축 단지 일부는 높은 청약 경쟁률에도 불구하고 미분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경기둔화에, 주택 주 수요층인 45~49세 인구가 2018년을 정점(약 436만명)으로 감소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자칫 투자 심리 위축으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자체간에도 기존 자원활용이 우선이라는 의견과 기존 땅 활용을 최대한 할 수 있도록 높게 재건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릴 정도로 정답은 없다”며 “재건축은 앞으론 철저히 사업성이 있는 단지와 그렇지 않은 단지로 구분될 것이며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보수나 수직증축 리모델링 식의 정비가 활성화 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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