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들“고용량 호르몬 남용 따른 부작용 우려” 반발
여성단체 등은 “성 접촉 연령 낮아져 현실적 필요성”맞서
정부가 지난 3년 간 결정을 미뤄왔던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재추진하고 나서자 이를 둘러싸고 찬반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고용량 호르몬의 상습복용에 따른 후유증이 클 것이라는 의견과 개방된 성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7일 현재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는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성관계 이후 의사 처방을 받아 복용하는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 이용자들이 손쉽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는 3년 전인 2012년에도 이를 추진했지만 의료계와 종교계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최종결정을 미뤄왔다.
산부인과 의사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는 안전성 등 우려를 들어 정부 방침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응급피임약에는 사전 피임약의 10배가 넘는 고용량 호르몬이 함유돼 있어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 시판 중인 응급피임약에는 ‘레보놀게스트렐’이라는 호르몬이 정제당 1.5mg 들어 있는 데 비해, 사전 피임약의 이 함량은 0.15mg이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습관적으로 응급피임약을 복용하면 체내 호르몬 균형이 깨져 생리불순, 발열, 구토, 질 출혈 발생은 물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영한 한림대성심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준비 없이 성관계를 한 여성, 특히 청소년은 원치 않는 임신을 막기 위해 응급피임약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반복적으로 복용할 수 있어 문제”라고 했다.
응급피임약의 피임효과가 평균 85%로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전문의의 관리를 통해 한시적으로 이용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입장 관철을 위해 ‘강경투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조병구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총무이사는 “의사회 차원에서 반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방침을 밝혔다.
이에 반해 여성계와 시민사회단체 일각에서는 개방된 성문화 등 현실론을 펴며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대표는 “원치 않는 성관계 때문에 응급피임약을 복용할 필요가 있어도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워 병원을 못 찾는 경우도 많다”면서 “어차피 부모 등 제3자가 응급피임약을 처방 받고 있는 현실에서 접근성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 대표는 “성 접촉 연령이 낮아지고 있는 데다 성폭력, 강간 등 성범죄도 증가하고 있다”면서 “원치 않는 임신을 막는 것은 여성 인권의 문제”라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