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체류객 발생 불구 초기 대응 미숙
예견된 저가항공사 예약 문제 개선 안돼
일부 얌체 상혼 제주관광 이미지 악영향
‘이번에도 위기 대응 매뉴얼은 없었다.’
제주국제공항이 사흘간 폐쇄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관계 당국의 위기관리 매뉴얼은 무용지물이었다. 당국은 “매뉴얼대로 했다”고 강조했지만 미숙한 초동대처뿐만 아니라 대응기관이 서로 따로 노는 상황이 빚어져 설득력을 잃고 있다. 전시를 방불케 한 상황에 대한 당국의 ‘오판’은 결국 아시아 대표 관광지로 손꼽히는 제주의 명성에 먹칠을 하면서 관광제주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제주도는 지난 2014년 11월 제주도관광협회와 제주관광공사,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제주지방항공청 등 4개 유관기관과 함께 ‘공항 체류객 불편 해소 대책’을 만들었다. 같은 해 8월 태풍 ‘나리크’의 내습으로 제주공항에 대규모 항공기 결항 사태가 빚어지면서 체류객들의 공항 내 노숙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제주공항 폐쇄 사태 초기에 매뉴얼에 따른 유관기관간 협조체제는 전혀 구축되지 않았다. 제주 지역에 32년 만의 폭설이 쏟아진 지난 23일 오전 대설특보가 발효된 이후 항공기 결항사태가 이어지면서 공항이 폐쇄될 수 있다는 점이 충분히 예상됐지만 제주도 등 유관 기관 대책회의는 공항 폐쇄 50분 전에 열렸다. 첫 대응이 늦어지면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종합관리상황실도 이날 밤 11시쯤에야 공항 내에 차려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관계 기관들이 사태 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등 허둥댔다. 실제 체류객 물품 지원 업무를 맡은 제주관광공사는 예상 체류객 규모도 파악하지 못하고 공항 폐쇄 첫날 담요 550장, 생수 5,000개, 빵 등 간식 3,500개를 제공하는데 그쳤다. 당시 공항 체류객은 1,000명이 넘었다.
숙박시설 안내를 담당한 관광협회는 당시 제주도내 숙박업소 명단만 배포하는 바람에 체류객들이 직접 전화를 통해 숙박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또 대규모 체류객을 발생시킨 원인 중 하나인 저가항공사의 예약시스템도 태풍 등 대규모 항공기 결항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문제점으로 지적됐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대형 항공사들은 문자메시지로 탑승시간 등을 안내한 반면 저가항공사들은 선착순으로 대기표를 발급해 대기자들이 공항을 떠나지 못한 채 노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사흘간 제주에 발이 묶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렌터카와 숙소 요금 바가지 등 얌체 상혼은 제주관광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부 과장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피해사례까지 SNS 등을 통해 번져나가면서 제주관광업계가 도매금으로 원성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송재호 전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은 “이번 제주공항 폐쇄사태에서 드러난 대응 시스템 부재는 메르스 사태처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 국토교통부, 제주도, 한국공항공사 등이 효율적으로 협력이 이뤄질 수 있는 업무체계만이라도 우선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2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적 항공사들은 이날 오전 6시부터 27일 오전 2시까지 제주에서 임시편 24편을 포함한 총 212편으로 4만1,500여명을 실어 날랐다. 전날부터 이날 오전 6시까지 제주를 빠져나간 체류객(2만7,880여명)을 포함하면 27일이면 수송 작전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제주=김영헌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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