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 긴 갈색 머리를 하고 짙은 눈 화장을 한 여인이 계단을 올라왔다. 주인공은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 에서 선우 엄마를 연기한 배우 김선영(40). ‘뽀글파마’ 가발과 ‘몸빼 바지’ 를 벗으니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 가 따로 없다.
“화장하면 사람들이 많이 몰라보더라고요.”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선영이 수줍은 듯 환하게 웃었다. 여기까진 ‘함정’이었다. 마주 앉아 한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눠 보니 ‘천상 아줌마’다. “아이고, 내가 인터뷰한다고 미용실에서 풀메이크업 하느라 긴장해 목에 담이 왔어요.” 목에 네 장의 파스를 붙인 이유를 묻자 그는 극중 선우 엄마처럼 너스레를 떨며 수다를 쏟아냈다. 사투리를 섞어가며 던진 호기심 어린 표정들이 딱 선우 엄마다. 극중 성동일을 보면 짓궂은 농담을 던졌던 선우 엄마의 장난은 현실에서도 이어졌다. “기자님, 미혼이라고? 내 친구 있는데 어때요?” 김선영의 엉뚱한 농담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종방 뒤 주어진 푸켓 ‘포상 휴가’는 어땠나.
“정말 재미 있었다. 새벽 두 시까지 놀다 잠든 게 아쉬울 정도로. 이우정 작가가 다른 일정으로 못 와 미안하다며 출연진들에게 로브스터를 쐈는데 그걸 못 먹어 아쉽다. 휴가 중에 남자 주인공 넷(박보검, 류준열, 안재홍, 고경표)이 tvN ‘꽃보다 청춘’의 아프리카 촬영을 위해 돌발적으로 끌려 갔는데, 이것도 재미있었다. 나도 깜짝 등장하지 않을까 싶은데, 거의 벗고 나올 거다. 더운 지역이라 너무 편한 옷을 입고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지 않나.
“화장하면 진짜 못 알아본다. 장례식장에 갔는데 사진 찍어 달라고 해서 당황한 적은 있지만. 다른 것보다 부모님께 효도한 기분이라 뿌듯하다. 두 분 다 정년 퇴임하고 집에 계셔 드라마를 즐겨 보는데, 화제가 되는 드라마에 딸이 나오니 정말 좋아하신다.”
-극중 선우 엄마와 많이 닮은 것 같다.
“대본을 받고 놀랐다. 실제 나와 닮은 구석이 굉장히 많아서. 선우 엄마처럼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다. 제작진이 애초 경상도 출신 구수한 선우 엄마란 캐릭터를 잡아 놓긴 했지만, 내 평소 특징 등을 다 캐릭터 안에 집어 넣었더라. 내가 실제 경상도 영덕군 강구면 출신이기도 하고.”
-‘응팔’ 합류는 어떻게 됐나.
“제작진이 날 알고 있더라. 드라마 ‘호텔킹’ 에서 조연으로 나왔는데 그 때 처음 보고 영화 ‘국제시장’을 보러 갔더니 ‘어 저 사람 또 나왔네’ 라고 눈 여겨 봤다고. 직접 신원호 PD를 만나보니 사람이 참 따뜻하더라. 누군가 촬영장에서 실수하면 ‘또 실수하면 사랑한다고 고백할거예요’란 농담을 던져 언 분위기를 깨준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세 번째인 만큼 어느 곳보다 촬영장 분위기가 좋다. 우리 코믹 연기 선생은 신 PD였다. 배우들이 다음 ‘응답하라’ 시리즈엔 직접 연기를 하라고 했을 정도니까. 다만, 썰렁한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게 흠이다. 오래 알고 지내던 스태프들은 신 PD 농담에 질색을 한다.”
-1988년 선영의 모습은 어땠나.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시골에 살았다. ‘응팔’ 속 모습과 진짜 비슷하게 살았다. 이웃 사람들이랑 음식 나눠먹고. 우리 집에 대문이 없었다. 큰 철문을 달려 했는데, 그걸 누가 훔쳐가 결국 문 없이 살았다.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우리 집을 오갔고, 우리 집 마당은 동네 놀이터였다. 개들이 ‘합궁’하는 장소이기도 했고. 시간이 흘렀지만 난 아직도 비슷하게 산다. 한남동 이슬람사원 인근에 사는데 동네 아줌마들끼리 친하다. 내가 일보러 나갈 때는 앞집 아줌마한테 딸(6세)을 맡겨 놓고 일 보러 가고. 난 아파트에 한 번도 산 적이 없다. 연극할 때 돈이 궁할 때는 언니한테 전화해 ‘10만원 만~’ 이러며 돈을 빌려 생활하기도 했다.”
-‘응팔’ 속 부모 캐릭터 중에선 가장 막내라 부담이 컸을 것 같다.
“성동일 이일화 라미란 선배 등과 비교하면 내 연기 경력이 미천하잖나. 그래서 부담이 컸다. 드라마 들어가기 전에는 초반에 나온 4부 대본 들고 커피숍에 가 대본만 팠다. 다행히 (이)일화 언니와 (라)미란 언니가 편하게 날 이끌어줘 고마웠다. 대본 연습 끝나면 같이 차 마시고 밥 먹으며 수다 떨고. 촬영 중간 시간이 붕 뜨면 셋이 의정부 시내 나가 놀기도 하고. 미란 언니가 ‘배우 카드’ 가 있어 영화 공짜로 보여주기도 했다. 태국 가선 나 모자 사주고, 마사지도 시켜주고. 정말 친자매처럼 지냈다.”
-연기를 시작한 지 올해 20년이 됐는데, 중간에 위기는 없었나.
“경제적으론 늘 어려웠다. 아직 차도 없고. 아이 낳곤 정말 힘들었다. 내가 배워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연기 밖에 없는 데 쉬어야 했고, 남편도 최선을 다해 공연 올리고 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 때 부모님 집에 얹혀 살았다. 고기가 엄청 먹고 싶은데 자존심 상해 엄마한테 사달라는 소리도 못했고. 자존감이 무너졌을 때다. 힘들었던 얘기하면 정말 기자 분 바로 울려드릴 수 있다. 그런데 그냥 여기까지만 하겠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려서부터 관심이 많았다. 하루에 7~8개씩 외국 영화 비디오테이프 빌려 보며 연기 공부하고 그랬으니까. 중학생 때 연극 연출을 맡았는데 흥미를 느껴 연극 무대에 서는 것에 대한 꿈을 키웠다. 대학교(한림대 철학과)가서도 연극만 했다. 그러다 1995년 ‘연극이 끝난 후에’로 데뷔했고. 어려선 연극 밖에 몰라 드라마와 영화를 무시했다. ‘난 가난한 예술가로 살 거야’란 생각에 사로 잡혔던 때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를 시작하고 보니 그런 생각을 한 때 품었던 내가 한심해지더라. 무대와 달리 카메라 앞에서 울고 웃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함부로 생각했던 것에 대해 반성도 많이 했고. 어려선 내가 워낙 독불장군이었다. 성격도 셌고.”
-‘응팔’ 속 구수한 선우 엄마 이미지가 너무 세 앞으로 새로운 작품을 맡는 데 고민이 될 수도 있다.
“차기작이 영화 ‘원라인’인데 사기꾼으로 나온다. ‘응팔’과 완전히 다른 캐릭터다. 푸켓 가서 미란 언니한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라고 물어봤다. 그 때 돌아온 말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였다. 성의 없이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진심을 담아 한 얘기였다. 그 말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이 말을 하던 선영은 실제로 눈물을 흘렸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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