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월 28일
1986년 1월 28일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가 폭발,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했다.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 발사대를 떠난 지 73초 만이었다. CNN 생중계를 본 시청자들은 승무원들이 손을 흔들며 기지를 나와 우주선에 오르는 장면서부터 저 모든 과정을 속절없이 지켜봤다.
크리스타 매콜리프(Christa McAuliffe, 1948~1986)도 승무원 중 한 명이었다. 뉴햄프셔 주 콩코드 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던 그는 85년 7월 미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교사 선발 경쟁에 응모, 1만1,000대 1의 경쟁을 뚫고 탑승자가 됐다. 그의 임무는 우주 원격 수업이었다. NASA는 그 수업을 미국 전역에 중계할 예정이었다.
매콜리프의 자리를 탐낸 이 가운데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존 덴버(1943~1997)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 헨리 존 도이첸도르프 주니어는 B-58 폭격기 최고속 운행기록을 세 차례나 수립한 미 공군 파일럿이었다. 어린 덴버의 꿈도 하늘을 나는 거였다. 뮤지션으로 성공해서 전용 비행기를 타고, 취미 삼아 경비행기를 몰게 된 뒤로는 꿈의 하늘이 우주 너머로 확장됐다. 반전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는 80년대 군축 콘서트 참석차 소련을 방문, 1,000만 달러를 낼 테니 미르 우주정거장에 다녀올 수 있게 해달라고 소비에트연방우주국에 제안한 적도 있다고 훗날 자서전에 썼다. 그가 NASA의 우주 교사 프로그램에 도전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촬영일정 때문에 챌린저 발사 생중계를 놓친 그는 그날 밤 TV뉴스를 통해 폭발 장면을 보며 넋을 잃었고, 무아지경에서 기타를 쥐고 곡을 연주하게 됐다고 한다. 그 곡이 매콜리프에게 바친 ‘Flying For Me’였다. 첫 네 소절 옥타브의 끝에서 끝까지, 마치 우주선이 상승하듯 솟구쳐 오르는, 간절한 소망의 기도 같은 서정적인 곡이다. 노래에서 그는 자신이 그 ‘불화살’에 타고 싶었다고, 모든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엄마들 아니 모든 이들의 꿈을 저 별들 위로 가져가고 싶었다고, 거기서 두려움에 떠는 이들과 모든 외톨이들을, 우리 모두를 한 발짝 더 가까이 서게 해줄 노래를 찾고 싶었다고, 바로 그 마음이 매콜리프와 모든 승무원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노래했다. 노래의 후렴은 이렇게 반복된다. “They were flying for me/ They were flying for everyone/ They were trying to see a brighter day for each and everyone”덴버도 97년 10월 12일 비행 도중 사고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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