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양촌면
새해를 맞아 찾은 충남 논산시 양촌면(陽村面)은 ‘햇빛촌’이라는 말 그대로 햇볕이 가득했다. 대둔산 기슭에 자리잡은 양촌면 하늘은 파랗게 물들었고 골짜기 고샅고샅 자리잡은 감 덕장에는 플라스틱 감꼬지에 매달린 곶감들이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었다.
양촌면은 경북 상주, 충북 영동과 함께 전국 3대 곶감생산지로 유명하다.
양촌의 들녘과 산자락에는 150년 전부터 심기 시작한 15만 그루의 감나무가 있다. 이곳 241 농가에서는 연간 6만3,000접(1접은 100개)의 곶감을 생산, 70억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2006년 곶감특구로 지정된 곶감 산지
국내에서 재배하는 감은 고종시 통감 꾸리감 백동시 둥시 배시 물시 등 여러 품종이 있다. 양촌 곶감은 그 중에서도 맛이 좋고 당도와 타닌성분이 많은 품종 ‘월하’를 원료로 만든다. 감 모양이 둥글둥글해 ‘두리감’이라고도 한다. 약간 검은 색을 띠고 있어 ‘둥시’가 주종인 경북 상주와 충북 영동 곶감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2006년 양촌면 일대는 곶감특구로 지정됐으며 지리적표시 등록, 충남도지사의 ‘으뜸Q’ 인증 등을 받았다.
이곳 곶감은 겉은 쫄깃하고 속은 물렁한 반건시다. 반건시를 말리면 표면에 시상이라는 하얀 분이 피어난다. 흰 분은 건조기 등 인공의 힘을 빌리면 생기지 않는다. 납작한 모양으로 면실로 감아 놓은 중국산과는 차원이 다르다.
곶감깎기는 서리가 내린다는 절기 상강이 지나면 시작된다. 이 시기가 되면 마을 곳곳에서 진풍경이 벌어진다. 건설현장에 있어야 할 굴삭기가 감 따기에 동원되기 때문이다. 마을 남정네들은 굴삭기 삽에 올라 감을 딴다. 감나무 가지가 약해 나무에 올라갈 수 없다.
감 덕장 아래에서는 수십 명의 아낙들이 둘러앉아 감을 깎는다. 껍질을 깎은 감은 감꼬지에 꽂혀 덕장에 매단다. 열을 맞춰 주렁주렁 달린 수 만개의 감은 마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이곳 곶감은 건조 과정에서 맨손을 대면 상품이 된 곶감에 지문이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로 예민하다. 때문에 원료감의 껍질을 깎을 때부터 위생장갑을 사용하고 덕장에 널어 놓은 뒤 45일간 말리면서 사람 손을 한번도 타지 않고 햇빛과 바람이 만들어 낸다.
대둔산과 바랑산 품에 안긴 양촌면은 북서계절풍이 강해 통풍이 잘되고 먼지 등이 날리지 않는 깨끗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색깔을 내기 위해 유황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토질도 물 빠짐이 좋은 마사토로 감나무 생육에는 제격이다.
곶감은 설 대목 한 달 전부터 출하가 시작된다. 요즘 전국에서 밀려온 주문량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생산량의 80%이상이 12월 하순부터 이듬해 설 전까지 팔려 나간다. 품앗이에 나선 동네 아낙들은 집집마다 돌아가며 10여명씩 모여 선물용 포장을 한다.
양촌 감나무는 대부분 수령이 30년 이상의 고목이다. 100년이 넘는 나무가 부지기수다. 고목이 되어야 땅속 길게 내려간 뿌리에서 골고루 영양분을 빨아들여 묵은 나무에서 딴 곶감은 육질이 쫄깃하고 당도가 높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감나무를 심는다. 훗날 아들과 손자가 자신처럼 선대가 심어놓은 나무에서 감을 따듯 대물림을 위해서다.
대를 이어 곶감을 만드는 농민 김남충(59)씨는 해마다 수령 100년이 넘은 수백 그루의 나무에서 감을 딴다. 올해 4만접을 깎은 김씨의 곶감 대부분이 김씨의 증조부가 심은 나무에서 땄다. 김씨는 “해마다 증조할아버지가 심어놓은 나무에서 감을 따 곶감을 만든다”며 “고목이라 그런지 어린 나무보다 매달리는 개수가 적지만 단맛이 유별나게 높다”고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감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산다.
아이들은 봄철 하얀 감꽃을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다니다 배고프면 곶감 빼먹듯 떫은 꽃잎을 하나씩 따서 입에 넣고 다닌다. 마을 사람들은 손님이 찾아오면 감잎차를 내놓는다. 차는 3월에서 6월 사이에 딴 어린 잎을 살짝 찐 뒤 햇빛에 말려 만든다.
까치도 유난히 많다. 서리가 내리는 시기부터 이듬해 봄까지 까치가 몰려온다. 들녘과 산자락에 감나무가 지천이고 인심 좋은 마을 사람들은 감을 수확할 때 까치 밥을 넉넉하게 남겨놓는다. 까치가 이 나무 저 나무 날아다니며 홍시를 쪼아먹는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다.
농민들은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양촌 곶감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매년 12월 중순 양촌곶감축제를 열고 있다.
양촌리 체육공원에서 열리는 축제는 송어잡기, 메추리 구워먹기, 감길게 깎기, 감깎기 체험, 송어잡기, 메추리 구워먹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감와인, 막걸리 시음회, 곶감팥죽시식회도 있어 시골의 훈훈함과 정을 선사한다.
딸기와 상추도 전국 최고 품질 자랑
양촌에는 곶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딸기도 주산지다.
달콤하고 쫄깃한 곶감을 먹은 뒤 입가심으로 딸기를 한입 베어 물면 새콤한 딸기 향이 입 안을 말끔하게 해준다.
272 농가가 비닐하우스 1,885동에서 딸기를 재배, 연간 117억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곳 딸기 역시 무공해 청정딸기로 당도와 산도가 높아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가락동시장에서 경락가격이 다른 지역 딸기보다 훨씬 높다.
상추도 명성이 높다.
일명 ‘양반 꽃상추’는 일반 재래품종에 비해 저장성이 높다. 재배 과정에서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퇴비와 미생물만을 이용해 생산한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등에서 전국 최고의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122농가에서 154억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산사탐방과 산촌마을체험 등 즐길 거리도 다양
볼거리와 즐길 거리도 다양하다.
서울에서 차량으로 2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등산과 산사탐방, 산촌마을체험이 가능하다.
봄에는 산나물 채취 및 봄꽃 맞이 여행, 여름에는 1급수 계곡에서 맨손 물고기 잡기 체험, 늦가을은 양촌 곶감 축제, 겨울에는 바랑산을 중심으로 월성봉, 장삼봉을 잇는 등산코스에서 겨울산행 및 눈썰매타기 행사가 이어진다.
중산리에 자리한 쌍계사는 템플스테이도 가능해 고즈넉한 산사에서 도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평안하게 달랠 수 있다.
조계종 소속의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고려 초기에 관촉사 은진미륵불을 세웠던 혜명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대웅전 정면의 문살에는 연꽃, 모란, 국화, 무궁화, 작약 등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대웅전 안에는 여느 사찰과 다르게 본존불과 협시불 모두 닫집이 있다. 대웅전 기둥 하나를 칡넝쿨로 세운 것도 이채롭다. 칡넝쿨 기둥을 돌며 소원을 빌면 무병장수한다 하여 윤달이 드는 해에는 많은 불자들이 찾아온다.
오산리 바랑산과 산중턱의 법계사도 빼놓을 수 없다.
바랑산은 대둔산 줄기 주봉가운데 하나로 둥그런 암벽이 툭 튀어나온 모양이 스님이 등에 지고 다니는 바랑을 닮아 이름이 붙여졌다. 법계사는 오래된 사찰은 아니지만 나이 든 100여명의 비구니들이 몸을 의탁하고 있어 좋은 법문을 들을 수 있다.
천연림으로 구성된 바랑산 등산을 마치고 법계사에 들러 산사의 정취를 느낀 뒤 산아래 산촌체험마을인 햇빛촌바랑산마을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다.
신기리 괸돌마을의 고인돌도 빼놓을 수 없다. 애초 20여기가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현재 15기가 남아있다. 이곳 고인돌은 바둑판식이 주를 이루고 잇는데 큰 것은 길이 3m너비 1.5m내외이고 북방식과 남방식이 섞여 있다. 강을 낀 이 마을은 깊은 산이 중첩돼 수렵과 채취가 쉬워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정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논산=이준호기자 junh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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