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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상담, 혼자 55명 맡아 얼굴보기도 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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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상담, 혼자 55명 맡아 얼굴보기도 빠듯”

입력
2016.01.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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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보호기관 상담원의 24시

1주일에 4회 야근 기본이지만 아동 한 달에 한 번 접촉 힘들어

“자주 만나야 마음의 문 여는데…”

임금 낮고 근무 환경도 열악해 보호기관 종사자들 이직률 높아

27일 서울 소재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상담원이 아동학대 신고 접수를 받고 있다. 굿네이버스 제공
27일 서울 소재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상담원이 아동학대 신고 접수를 받고 있다. 굿네이버스 제공

27일 서울 소재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오후 2시가 되자 상담원 이유리(25ㆍ가명)씨가 사무실을 나섰다. 지난해 9월 아버지로부터 신체 학대를 당한 여고생을 상담하기 위해서다. 골목길을 따라 10여분쯤 걷자 커피전문점이 나왔다. 가족이 있는 집보다는 대화하기 편할 것 같아 택한 장소다. 멀리서 지켜본 여고생의 모습은 여느 여고생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고민이 많은 듯 이따금 무표정하게 창 밖을 바라봤다. 상담원 이씨는 “학대 사후 관리 차원에서 여러 번 대화나 심리치료를 시도했지만 거부하다가, 결국 아이가 요청해 상담을 시작한 사례”라며 “재학대가 있었으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재학대는 없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시간 가량 상담을 진행한 후 사무실로 돌아왔지만, 이씨는 물 한 잔 마실 시간 없이 상담일지 작성에 들어갔다. 그는 “하루 많으면 3건의 상담을 진행하는데 일지까지 작성하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말했다. 부모들의 경우 저녁 시간에만 상담이 가능할 때가 많아 1주일에도 서너번쯤 오후 9시에 퇴근하는 것은 기본이다. 평소 오전 9시에 출근한다는 이씨는 이날은 30분 일찍 나와 집에서 혼자 지내는 초등학생을 상담하고 왔다. 부모가 일을 나가고 아이를 내버려 둬 지난해 8월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은 아이다.

이씨가 ‘관리’하는 학대피해아동ㆍ청소년은 이날 상담한 초등학생, 여고생을 포함해 55명이나 된다. 그는 “한 명 한 명 집중해서 돌봐주고 싶어도 맡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 아이 한 명을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신체 학대, 정서 학대, 방임 등 아이마다 대처해야 하는 방법도 다르고, 자주 만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중요한 데 이런 상황에서는 몸이 여러 개라도 제대로 돌볼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인력부족으로 근무 외 시간을 반납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현장조사팀의 경우 팀 5명(2인 1조)이 3개 구를 맡고 있다 보니 일주일에 4, 5회씩은 현장에 나가고 주말 출동도 잦다.

오후 4시가 되자 김태영(31ㆍ가명) 현장조사팀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날 오전 11시쯤‘아빠가 4살짜리 아이를 때린다’는 신고가 접수돼 피해 아동과 신고자를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김 팀장은 “아이가 어린데다 겉으로는 상처가 잘 드러나지 않는 복부를 맞았다는 내용이어서 긴급 출동이 필요했다”며 “아동학대가 의심돼 가해자를 만나기 위한 2차 방문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이어 “오늘은 운이 참 좋은 편”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가족이 신고한 경우라 협조가 잘됐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신고를 당한 이들의 80% 가량은 상담원들의 방문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탓에 초기 개입이 쉽지 않다. 문전박대는 기본이고 침을 뱉거나 ‘네가 뭔데 상관하느냐’ 식의 막말과 욕설을 하는 이들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김 팀장은“몇 년 전에는 흉기로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며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많은 상담원들이 상담을 나갈 때 두려움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 신고 늘면 뭐하나…움직일 손발 없는데

8세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울산 계모사건(2013년), 아버지와 동거녀에게 학대를 당하던 11세 초등학생이 가스 배관을 타고 탈출한 사건(2015년) 등 잇단 아동학대 사건이 알려지면서,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아동을 학대의 손길에서 구하고, 재학대를 방지해야 할 최일선에 있는 아동보호상담사들의 열악한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업무량은 폭증하는데 인력 충원이 없다시피 하니 여기저기서‘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아우성이 나오고 있다.

2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2년 1만943건, 2013년 1만3,076건, 2014년 1만7,791건으로 증가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올해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지난해보다 줄었다. 66억8,500만원(26.5%)이 준 185억6,200만원이다. 주무 부서인 복지부는 전년보다 251억 원이 많은 예산을 요구했지만, 재정당국은 오히려 300억 원을 깎았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운영(13억8,300만원)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설치ㆍ운영(142억4,500만원) 학대피해아동쉼터 설치ㆍ운영(29억3,400만원) 등 필수예산들이 모두 깎였다.

이에 따라 올해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을 24곳 신설하려던 계획은 겨우 1곳을 늘리는 것으로 축소됐고, 학대피해아동쉼터 22곳을 확충하려던 계획은 아예 무산됐다. 현재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국에 55곳, 학대피해아동쉼터는 41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주요 시군구 250여 개에 배치된다고 하면 최소 아동보호전문기관 100개는 있어야 제대로 된 아동보호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다”며 “아동학대사건이 알려질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은 신고의무자 직군을 늘리고, 전담 검사를 배치하는 등 요란한 대책들을 쏟아 내지만 정작 시급한 조사 인력 확충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호기관의 절대 숫자가 부족하다 보니 아동학대가 발생해도 신속한 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2014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상담원이 신고접수를 받거나 경찰로부터 통보를 받은 후 학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현장에 나가는데 평균 2시간 30분이 걸렸다. 전남 소재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너무 넓은 지역을 커버하다 보니 재학대 등이 일어나지 않는지 모니터링 하기 위해 한 가정을 방문하고 돌아오면 반나절이 지나간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상담원 한 명이 맡고 있는 사례는 평균 66.5건(2014년 기준)이다. 부산의 경우 상담원 1인당 117.5건, 대전의 경우 81.6건이나 된다. 효율적인 아동학대 사례관리를 위해서는 상담원 1인당 15건이 적정하다는 것이 외국 연구결과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담원 1인당 약 2만4,998명 아동을 관리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1,860명)의 10배 이상이다.

열악한 처우…떠나는 상담사들

낮은 처우와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전문인력을 확보하기도 힘들다. 장시간 노동과 신변 위협에 시달리는데도, 아동보호전문기관 종사자들의 처우는 다른 사회복지담당자들과 비교하면 턱 없이 낮다. 이들의 인건비는 정부가 책정하는데 올해의 경우 3% 인상하는 데 그쳤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학대피해아동쉼터의 인건비는 각각 연 2,612만원과 2,112만원이다. 지난해 양로시설과 같은 사회복지시설의 인건비(3,900만~4,200만원)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김정미 본부장은 “다른 복지시설과 달리 이곳만 경력에 따라 보수가 올라가는 호봉이 적용 안돼 이직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려면 안정적 예산 확보가 급선무다. 더불어민주당 아동학대근절대책위원장인 남인순 의원은 “현재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아동 보호사업의 재원을 법무부의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기재부의 복권기금으로 편성하고 있어 예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며 “부처 일반 회계로 전환해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ㆍ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의 25%정도를 아동학대 예방 재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아동학대 예산이 늘수록 범죄피해자를 위해 사용해야 할 몫이 줄기 때문에 예산확대가 쉽지 않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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