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3월 이 전 총리의 ‘부패 척결’ 담화로 시작된 해외 자원개발 비리 수사가 결국 스스로를 옭아맨 꼴이 됐다. 법원의 판단은 같은 혐의로 기소된 홍준표 경남지사에 대한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장준현)는 29일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이 전 총리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완종의 인터뷰 녹음파일의 진실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비서진의 진술 신빙성을 모두 인정할 수 있다”며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4월 자원개발 비리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향신문 기자와 가진 통화는 사건의 발단이면서 이날 판결의 결정적 증거가 됐다. 성 전 회장은 통화에서 정치 자금을 건넨 정치인들의 이름을 폭로하고, 돈을 건넨 정치인 8명의 이름을 메모로도 남겼다. 이 전 총리는 충남 부여ㆍ청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2013년 4월 4일 오후 5시쯤 자신의 선거사무실에서 성 전 회장에게 현금 3,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건네 받은 혐의로 지난해 7월 불구속 기소됐다.
성 전 회장의 통화 내용과 메모를 증거로 인정할지 여부는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이었으나 재판부는 “진술 내용을 녹취하는 과정에 허위 개입의 여지가 거의 없고 진술 내용의 신빙성을 담보할 구체적 외부 정황도 있다”며 이를 인정했다. “성완종이 피고인에 대한 배신과 분노의 감정으로 모함하고자 허위 진술을 한 것 아닌가 의심을 하게 하기도 하지만, 기자로부터 정권 창출 과정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설명해달란 질문을 받고 금품 공여 사례를 거론한 문답 경위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법정에서 이뤄진 진술만 증거로 채택하고, 뇌물을 줬다는 성 전 회장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진술 또는 작성된 것이 증명된 때 증거로 삼을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증거 능력이 인정된 것이다.
검찰은 2013년 4월 4일 성 전 회장 비서진의 대화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기록과 비서진의 진술, 성 전 회장 차량의 고속도로 통행정보(하이패스) 기록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 전 총리 측은 성 전 회장이 선거사무소에 왔다고 한 시점에 그 장소에 있었지만 쇼핑백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는 이 전 총리 비서진들의 진술과 쇼핑백 내용물을 확인한 사람이 없다는 점 등을 들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완구 전 총리는 재판이 끝난 후 “재판부가 검찰 주장을 토씨 하나 안 빠뜨리고 다 받아들였지만 나는 결백하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20대 총선에는 불출마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재판 결과는 성 전 회장에게 1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홍준표 지사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홍 지사의 이름이 언급된 성 전 회장의 통화와 메모가 사실로 인정된 데다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홍 지사에게 돈을 건넸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두 사건 모두 ‘성완종 리스트’에서 파생돼, 홍 지사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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