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제조 업체 니콘이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사진 공모전 우승작이 조작으로 판명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사진 합성 논란이 일었다.
디지털 사진 합성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진 관련 디지털 기기의 성능이 향상되고 소프트웨어가 발달하면서 사진 조작의 영역은 날로 확장되고 있다. 역사 현장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 하는 보도사진 영역조차 합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끊이지 않는 디지털 사진 조작 문제를 정리했다.
2015년 11월 고릴라 흰 끈 사건
지난해 11월 호주 언론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올해의 보도사진 선정 과정에서 조작된 사진이 발견됐다. 선정 주최 측은 호주의 미디어그룹 ‘뉴스 코퍼레이션’ 소속 사진기자 데이비드 케어드가 출품한 사진을 심사하다 같은 상황을 담은 다른 사진들과 차이점을 발견했다.
멜버른 동물원에서 어미 품에 안겨 있는 새끼 고릴라의 모습을 담은 사진 중 케어드 기자의 사진만 배경이 깔끔하게 처리된 것이다. 같은 상황을 담은 다른 사진에는 새끼 고릴라 옆쪽에 흰색 물질이 찍혔다.
조작된 부분을 확대해 보면 조작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흰색 물질이 있던 부분에 패턴이 어색해 보인다. 포토샵에서 특정 영역의 점이나 면을 복사하는 도구인 도장툴(Clone stamp)을 활용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조작이 확인되자 케어드 기자는 출품을 취소했다.
2013년 퓰리처상 후보의 합성
프리랜서 사진기자 나르시소 콘트라레스는 미국 뉴스통신사 AP 소속으로 2013년 시리아 내전을 취재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히 기록했다. 그리고 함께 현장을 담았던 동료 기자들과 퓰리처상 수상자 명단에 포함됐다. 하지만 아래 사진이 합성으로 밝혀지면서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됐고 AP와 계약도 끝나게 된다.
2013년 4월 치료된 상처
뉴욕 데일리 뉴스는 보스턴마라톤 폭탄 테러를 보도하면서 보스턴글로브로부터 제공받은 사진을 1면에 싣는다. 하지만 원본 그대로가 아닌 부상자의 부상 부위를 보이지 않도록 수정한 뒤 지면에 게재한다.
쓰러져 있는 부상자가 오른쪽 다리에 심각한 외상(위 사진은 원본에 모자이크 처리)이 처참하게 드러나 있지만 뉴욕 데일리 뉴스 지면에 게재된 사진에는 부상 부위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보인다. 이 매체는 이 사진을 게재하며 원본을 수정했다는 안내를 하지 않았다.
뉴욕 데일리 뉴스의 보도는 “변형된 사진을 사용할 수 없다”는 보도윤리준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독자가 알아볼 수 없도록 변형을 가하는 행위는 진실 왜곡”이라고 지탄받기도 했다. “차라리 모자이크 처리를 하거나 경고 문구를 삽입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주장도 잇따랐다. “광고주의 요구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2006년 로이터 게이트
2006년 이스라엘이 레바논 공습 당시 프리랜서 사진기자 아드난 하지는 영국 로이터통신에 조작한 사진을 전송한다. 연기의 양이 실제보다 더 많아 보이도록 만들었다. 더 검게 만들기도 했다. 사진은 로이터 데스크를 거쳐 전세계에 뿌려졌다 미국의 한 블로거가 연기의 반복된 패턴을 확인하고 조작 의혹을 제기하자 하루 만에 삭제됐다.
로이터는 조작을 인정하고 해당 기자와 계약을 파기했다. 기자가 기존에 취재한 사진도 전부 폐기했다. 관련 업무를 담당한 로이터의 부서장은 해고됐다. 이 사진조작 사건은 ‘로이터 게이트’로 불리며 보도사진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로이터는 엄격한 사진윤리준칙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2003년 3월 LA 타임즈 사진 합성
LA 타임즈 간부급 사진기자 브라이언 왈스키는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전장에 뛰어든다. 전쟁 초기 왈스키는 공습을 피해 대기하고 있는 피난민과 이를 통제하고 있는 영국군의 모습을 촬영하는데 성공한다.
왈스키의 사진은 LA 타임즈 3월 31일자 1면에 실린다. 상황, 구도, 색감 등 신문 첫페이지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진이다.
그러나 완벽한 1면 사진은 “사진 왼쪽편 사람들이 중복된다”는 한 독자의 전화 뒤 조작 논란이 불거지고 결국 다른 두 사진을 합쳐서 만든 것으로 밝혀진다.
당시 LA 타임즈 사진책임자는 “위성 전송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고 기자에게 기대 섞인 질문을 했지만 기자가 합성 사실을 밝히면서 완벽한 사진을 위한 고의적인 조작으로 결론 났다. 신문사는 기자를 해고했다. 해고된 기자는 웨딩사진을 촬영하는 스튜디오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뛰어난 성능의 카메라가 쏟아지고 편집, 보정 프로그램이 정교해지면서 사진의 완성은 촬영에서 끝나지 않는다. 편집의 영역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애당초 ‘후보정’을 염두에 두고 촬영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심지어 여성 연예인을 모델로 한 화보촬영의 경우 ‘해당 연예인의 과거 사진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경쟁력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름다움의 정점에 있을 때 촬영한 사진이 훌륭한 합성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많은 사용자가 사진 합성을 하는 만큼 사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니콘 싱가포르 공모전 사태를 본 한 인스타그램 사용자의 인식이다.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에는 “합성도 작품이다”라는 의견도 있다. 합성에 둔감해지고 조작이 쉬워진 만큼 사진의 신뢰도는 떨어졌다. 보도사진도 이 흐름에 가세했다. 그러나 보도사진이 조작의 주체가 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사진이 ‘진실을 담아내는 매체’라는 인식은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오주석 인턴기자(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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