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미술품 경매사 소더비가 내놓은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회화 ‘여성의 얼굴’이 1,890만 파운드(약 331억 4,000만원)에 팔렸다. 2013년 경매 때 이 작품을 3,990만 달러(480억 2,000만원)로 구매한 소유주 입장에서는 입맛이 쓴 결과다. 가격이 25% 가량 하락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매의 총 낙찰가는 8,100만 파운드(수수료 제외)로 소더비가 예측한 9,800만~1억 3,800만 파운드에 크게 못 미쳤다.
세계 미술 시장의 중심인 경매사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휘청이고 있다. 지난달 26일 크리스티가 발표한 2015년 판매총액은 74억 달러로, 2014년에 비해 11%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더비는 아직 2015년 실적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태드 스미스 최고경영자는 지난달 22일 뉴욕의 분석가들에게 “2014년 같은 기간과 비슷한 수익을 냈다”고 밝혔다. 크리스티는 2009년 이래로, 소더비는 2011년 이래로 멈추지 않았던 성장세가 꺾인 것이다.
예고된 침체, 초고가 정책이 문제
현대 미술시장의 바로미터인 두 회사의 실적 위기를 해석하는 통상적인 관점은 세계경기침체가 미술품 투자심리도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해 중국 경제성장률이 2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기에 중국의 큰손들이 미술품에 돈 쓰기를 주저했다고 분석했다. 미술전문지 아트뉴스페이퍼는 유가 하락이 러시아ㆍ서남아시아 부유층의 씀씀이를 줄였다고 지적했다. 결국 미술시장의 침체는 예고된 것이다. 런던 마스터피스 아트페어의 나지 바세 최고경영자는 3일 소더비 런던 경매 결과를 두고 아트뉴스페이퍼에 “시장이 우리가 예측하고 있었던 범위 내 재조정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고가 미술품 경매 위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가 미술품 경매가 회사의 품격을 올렸을지는 모르나 수익성에는 해가 된다는 것이다. 우선 고가의 작품을 구매할 재력가들의 수는 매우 적다. 또 비싼 미술품의 경매를 성사시키려면 판매자와 구매자를 끌어들여야 하는데 여기에 막대한 보장가(개런티)제도와 마케팅비가 든다.
화려한 고가 미술품 경매의 함정, 보장가
두 경매사는 판매총액과 경매의 격을 띄우는 유명 작품을 자사 경매에 유치하고자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보장가 제도다. 보장가는 경매사가 판매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금액을 경매 시작 전 미리 보장해주는 것이다. 즉 이 보장가 아래 가격에 작품이 낙찰돼도 경매사는 보장가를 판매자에게 지불해야 한다.
고가 미술품 시장이 잘 나갈 때는 보장가가 경매사에도 이익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소더비는 지난해 11월 앨프리드 타우브먼 전 회장의 소장품을 경매하기에 앞서 타우브먼 일가에 5억 1,500만 달러에 이르는 보장가를 제시했다. 크리스티가 이미 4억 달러를 제시한 가운데 소더비로서는 옛 회장의 소장품을 라이벌사에 빼앗길 수 없었다. 경매는 1,200만 달러 적자가 났고 소더비의 주가는 6월에 비해 반토막이 됐다.
크리스티도 높은 보장가로 손해를 봤다. 지난해 11월 뉴욕 경매에서는 마릴린 먼로의 초상 4개를 병렬한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 ‘네 명의 마릴린’이 3,200만 달러에 낙찰됐다. 2013년 3,400만 달러에 이 작품을 샀던 판매자에게 크리스티는 4,500만 달러를 보장했는데 실제 판매액은 원래 판매액보다도 떨어지는 가격으로 나온 것이다.
시대는 중저가 시장으로
사는 이들이 없고 부담이 큰 고가 미술품만 팔 필요는 없다. 양대 경매사는 2016년 ‘중저가 시장’에 눈을 돌리겠다고 천명했다. 주시 필케넨 크리스티 인터내셔널 회장은 “10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 사이 시장에서 많은 경매를 성사시키는 것이 목표”라 밝혔다. 태드 스미스 소더비 최고경영자도 2만5,000달러에서 100만 달러 사이에 있는 ‘중간 시장’을 2016년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
두 공룡 아래 중소 경매사들은 이 분야에서 이미 성공을 거뒀다. 업계 3위인 필립스의 2015년 판매총액은 5억 2,300만 달러인데 작품당 평균 낙찰가는 10만 7,000달러다. 필립스는 고가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새 부유층’들을 고급 시계로 끌어들인 다음 동시대 미술품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방식으로 판로를 열었다. 온라인 전용 경매업체 패들8은 1,000달러에서 10만달러 사이의 작품을 다루면서 새로운 수집가들과 접촉했고 2015년 총매출은 전년도의 2배로 뛰었다
지난해 초 양대 경매사가 함께 2014년의 역대 최고 실적을 자랑하고 있을 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경기가 침체되고 소수 부유층에 부가 집중되는 시대에 미술품 경매 시장은 부유층의 시종으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비아냥 섞인 예측을 던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가 미술품을 살 부유층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고, 동시대 미술은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이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역시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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