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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아침을 여는 시] 춥고 가난한 광선이

입력
2016.02.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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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직장을 옮기면서 예전에 근무하던 학교의 이메일 계정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올해 강의를 맡게 되면서 폐쇄됐던 계정이 살아났어요. 편지함을 열어보니 수많은 업무메일들 가운데 한 학생의 편지가 들어 있네요. 2014년에 보냈는데 어제 제게 도착했어요. 졸업한 후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더 갖고 싶은데, “넌 벌써 스물 일곱 살이고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충고를 들었대요. 새로운 삶을 창조하며 매순간 주사위를 던지라는 니체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제게 묻습니다.

저는 벌써 마흔 일곱 살이고 훨씬 많은 이들에게 똑같은 충고를 들어요. 철학자의 사유가 정오의 햇빛처럼 제 삶을 환히 비추는 것 같지는 않아요. 누군가 종을 가져가버려 울리지 못하는 벙어리 종탑처럼 안개 속에 고아로 서 있는 기분입니다. 그렇지만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어떤 희망이 가느다란 광선처럼 빛을 실어나르고 있어요.

위대한 철학이나 희망이 이 삶을 온전히 덥히기는 힘들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춥고 가난한 빛들의 이어지는 애무로 아침은 또 시작되고 텅 빈 종루에도 생각의 종소리는 희미하게 울린다는 걸 배웁니다. 2년 만에 힘들게 도착한 이 편지처럼요.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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