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상대국 환율 조작 시 제재
美 무역촉진법 상ㆍ하 양원 통과
한국ㆍ대만 등 대미 무역 흑자국
우선 제재 대상 오를 가능성
“통상교섭본부 부활해야” 목소리
미국이 준비하는 일명 환율조작 국가 제재법이 ‘제 2의 슈퍼 301조’로 부상하고 있다. 슈퍼301조는 지나친 가격할인(덤핑)이나 정부 보조금 지급 등 무역 차별 행위에 대해 미국이 보복관세 부과나 수입쿼터 제한 등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이다.
14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베넷-해처-카퍼(BHC) 수정법안’으로 알려진 미국 무역촉진법이 상하 양원을 통과해 대통령 서명 절차를 남겨 놓고 있다. 이 법은 미국이 교역상대국의 환율 조작에 대해 제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국 통화를 지속적으로 저평가하는 환율 조작 국가에 대해 미국이 직접 무역 제재 조치를 내릴 수 있는 법안으로, 환율 개입국에 대한 조사ㆍ분석을 실시해 조작이 확인되면 국제 사회의 제제를 유도하고 통상ㆍ투자 부문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즉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한 환율 개입을 불공정 무역 행위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최근 미국과 무역에서 흑자 규모가 커지고 있는 우리나라가 제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이 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나라가 미국으로 상품을 수출할 경우 이를 수출보조금을 주는 것과 같은 불공정 무역 행위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무역대표부가 불공정무역 국가를 조사해 해당 국가의 수출품에 반덤핑관세나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보복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슈퍼 301조’의 ‘외환 버전’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경상수지 적자가 고착화된 미국 내부의 우려가 그대로 반영됐다.
조사ㆍ제재 대상은 미국과 무역에서 상당한 흑자를 얻는 나라, 전세계를 상대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중인 나라, 자국 통화를 저평가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지속적인 개입을 하는 나라들이다. 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이 조사ㆍ제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중국, 대만, 이스라엘 등과 함께 2000년 이후 미국과 무역에서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했고 최근 3년간 전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6%를 넘었다. 연구원에서는 이 국가들 중 경제규모가 큰 중국, 미국과 특수한 정치적 관계인 이스라엘 대신 한국과 대만처럼 경제규모와 정치적 영향력이 작은 국가들이 1차 조사 및 제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법안이 발효되면 미국은 환율 개입국에 대해 저평가된 통화와 무역 흑자를 시정하도록 1년의 유예기간을 준다. 이후 시정 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해당 국가에 압력을 넣고 해당국가 기업의 제품ㆍ서비스 구매와 신규 투자를 금지할 수 있다. 김성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당장 미국이 우리에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2차 가입 협상 때 원달러 환율과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단계적으로 조정하도록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가 대응하려면 과거 통상교섭본부처럼 외환ㆍ통상 연계 부문을 다룰 조직을 상설화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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