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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꿀팁] 창살 속 동물이 ‘숨을 권리’를 갖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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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꿀팁] 창살 속 동물이 ‘숨을 권리’를 갖기까지

입력
2016.02.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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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람들은 동물원의 동물들을 개인이나 나라의 권력을 과시할 목적으로 좁은 공간에 진열했다. 이를 ‘미네저리’(menegerie)라 부른다. 16세기 후반까지 유럽의 모든 왕들은 사적인 미네저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미네저리라는 말은 17세기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쓰였고 이국적인 동물들을 모아 놓은 것을 뜻하는 데, 유럽과 미국으로 건너가 야생동물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복의 역사는 이후 제국주의 시대에도 이어져, 1909년 일본은 우리나라 궁궐(현 창경궁)에 창경원이라는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다. 창경원은 이토 히로부미가 제안했으며 ‘동물원’이라는 공간은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의 트로피와도 같았다. 조지훈 시인은 이를 통감하듯 ‘동물원의 오후’라는 시에서 나라를 잃은 자신의 모습을 자유를 잃은 동물원의 동물에 비유했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가며 자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런던동물원은 파리 식물원의 학문 활동에 자극 받아, 1828년에 설립되었다. 동물들은 연구라는 명목으로 살아있는 박제의 역할을 했다.

‘동물원’(zoo)이라는 단어는 공공동물원(Zoological garden)이 생기며 쓰이기 시작했는데, ‘일요일에 동물원 걷기(Walking in the Zoo on Sunday)’라는 런던동물원에 대한 노래 때문에 유명해졌다. 여기에는 동물원이 과학뿐 아니라 ‘위락’을 제공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동물원이 대중을 대상으로 공개되어 일반인이 동물원을 걷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때까지 동물원의 동물 전시법은 거의 창살이나 울타리였다. 사람들은 점점 갇힌 동물을 보기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동물원 전시의 역사는 1907년, 독일의 동물상이자 조련사인 칼 하겐베크가 동물원을 연 해를 기점으로 크게 나뉜다. 나누는 기준은 창살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최초의 근대 동물원인 오스트리아 쉔부른 동물원에서 과거의 동물 전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양효진 제공
최초의 근대 동물원인 오스트리아 쉔부른 동물원에서 과거의 동물 전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양효진 제공

그는 수십 년간의 동물 조련 경험으로 동물들이 얼마나 높이, 얼마나 멀리 점프할 수 있는지 알았고, 스위스 건축가와 함께 깊이 파인 구덩이인 해자를 설계해 창살과 울타리를 없애고 동물을 사람들로부터 분리했다.

‘해자’(moat)는 프랑스어 ‘motte’가 어원이며 ‘언덕, 등성이’를 의미한다.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영국의 정원 양식인 ‘하하’(ha-ha)를 응용했다. 또한 보이지 않는 해자로 나눈 구역을 통해 홍학, 얼룩말, 사자 등 여러 동물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전시에 ‘파노라마’라는 이름을 붙였다.

후에 하겐베크는 ‘철장 사이의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사육 동물이 아니라 가능한 큰 한계 내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자유로운 동물을 전시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동물원 동물들의 삶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었다는 데 의미가 크다. 갇혀있다는 인식이 줄어들며 동물원이 동물들의 보호처가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겐베크가 자신의 사업을 위해 죽인 동물의 수를 보면 동물에게 자유를 주고 동물을 노아의 방주에서 보호하기 위한 일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자신의 사업을 위해 동물을 거래 가치로 환산하고 동물이 점차 사라져가는 현실 속에서 낙원을 기대하는 대중의 욕구에 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파노라마 방식은 현대에도 여전히 대표적인 동물원의 동물 전시 방식이며 이 기법을 ‘모든 현대 동물원 건설의 출생 증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물전시는 현재의 시선으로 여전히 단조로웠고 당시 다른 동물원들도 이를 따르기는 했지만 이를 넘어서는 획기적인 전시는 하지 못했다.

1920년대에는 위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의 필요보다는 관리의 용이성이 더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이를 ‘화장실 시대’라고 한다. 사람들은 동물을 깔끔하고 세심하게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콘크리트, 타일, 유리 등으로 된 환경은 소리를 울리게 만들고 단조로워 동물들의 스트레스를 높이고 결과적으로 동물들의 정신적 결핍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1960년대에 환경운동이 시작되고 불경기가 겹쳐 동물원의 방문객이 줄어들었다. 1970년대에 시작된 동물권 운동도 열악한 동물원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또한 레저시간이 늘어나며 생긴 테마파크로 사람들이 몰리며, 동물원은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애를 썼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스트리아 쉔부른 동물원의 변화한 사자 전시 방법. /양효진 제공
오스트리아 쉔부른 동물원의 변화한 사자 전시 방법. /양효진 제공

동물원 동물들에게도 ‘복지’라는 개념이 도입되었고, 동물들은 드디어 ‘숨을 권리’를 가지기 시작했다. 1975년 시애틀 우드랜드 파크의 데이비드 핸콕이 발전시킨 ‘몰입전시’는 건물과 울타리를 가리고 동물이 살고 있는 서식지를 집약하여 표현해, 동물과 사람이 같은 서식지에 있는 것 같지만 실제 공간은 나뉘어져 있는 전시 기법이다. 동물의 모습은 길을 걸어가다 우연히 만날 수도 있고,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관람객들은 만족했다. 동물원 환경이 자연에 가까울수록 사람들의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012년 스페인에 있는 63개의 동물원 환경의 적합성을 평가한 결과, 77.8%의 관람객이 자연적인 환경일수록 동물복지에 적합하다고 답했다. 예전보다 동물을 더 볼 수 없는데도 오히려 더 큰 만족감을 느꼈다.

현대 동물원은 보전을 위한 동물원의 기능을 강조하며 ‘생태계 동물원’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미국 세인트 루이스 동물원의 큐레이터였던 윌리엄 콘웨이는 서식지 보전 프로젝트를 위한 동물원의 역할을 내세우며 1999년 야생동물 보전 협회(Wildlife Conservation Society, WCS) 회장직에서 은퇴할 때까지 25개국, 350개 이상의 보전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스위스 취리히 동물원의 ‘마조알라 우림’ 전시는 온도, 습도를 맞추고 폭포, 바위, 땅과 같은 무생물을 통해 마다가스카르의 우림을 재현하고 그 안에 사는 동물들을 위한 서식지 보전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동물원 리모델링 전, 후의 호랑이 방사장 모습. /양효진, 윤여경(왼쪽부터) 제공
서울동물원 리모델링 전, 후의 호랑이 방사장 모습. /양효진, 윤여경(왼쪽부터) 제공

‘멸시하는 것은 내려다보고, 존경하는 것은 올려다본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동물은 위에서 아래를 바라볼 때 안정감을 느낀다. 영역을 순찰하고 먹이를 찾기 좋아서이다. 동물들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방식에서 사람들은 은연중에 동물을 하등하게 여긴다. 그러나 동물이 사람의 시선 위쪽에 있으면 동물도 스트레스를 덜 느끼고 관람객들도 동물을 보다 존중한다.

동물에 대한 인식은 역사의 흐름을 따르는 동물원 전시의 변화와 함께 달라질 수 있다. 동물원에 방문해 동물을 바라보며, 역사 속에 휩쓸린 동물들의 삶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길 바란다.

서울동물원 동물큐레이터 양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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